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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Feb 02. 2021

엉뚱한 결벽증

-내 글에 담긴 마음은 어느 정도 진심일까?-

  나한텐 이상한 결벽증이 하나 있다. 더러운 걸 한시도 못 참고 머리카락 한 올도 용서치 않는 그런 서장훈 파 결벽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말이나 태도에 대한 나의 지나친 방어적 결벽증이다.

  "어디에서 근무하세요?"

  "**대학교에서 근무합니다"

  "아, 네. 대학 강사시군요."

  "어, 아뇨, 대학 강사라기보다는 한국어학당 강사입니다"

  "그럼 대학 강사지요"

오히려 질문한 쪽에서 수긍을 하고 마무리를 한다. 하지만 상쾌하지만은 않다. 대학교를 위한 교육기관이고 소속이 그럴 뿐이지 우리가 아는 대학 강사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다른 곳에서 "선생님, 선생님"하면 난 강산데 학교 선생님으로 오해받는 거 아닌가, '네'라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지경에 이른다.

"등단하셨네요"

"아~ 네~~ 근데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은 잡지예요. 좀 더 고민해 볼 걸 그랬어요"

 누가 묻지도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등단'이라는 말이 무슨 굉장한 이력이나 능력으로 비칠까 봐 미리 강철 연막을 친다. 독서논술 강사를 한다고 얘기하기까지도 십몇 년이 지나고서야 가능했다. 책을 안다고 하기엔 그게 나의 직업이라고 하긴에 뭔가 많이 부족하다는 나의 생각이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선뜻 뱉지 못하고 우물쭈물 넘기게 된 것이 이유였다. 이것이 나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인지 등 떠밀려 일을 하다 보니 생긴 버릇 때문인지 그 또한 알 수가 없다. 그냥 나를 제 점수로 딱 그만큼만 봐주기를 원하는데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 나는 한참 멀리 가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 속편하다.

 왜냐하면 난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주저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앞장서서 내가 하기도 싫어하며 고민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시원하게 바로 끝내 버리길 좋아한다. 그리고 마음 아프더라도 잘라 버리고 해결해 버리는 쪽을 택한다. 여러 번 고민 끝에 앞뒤 재지 않고 그냥 질러버릴 때도 있다.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나라는 사람을 내가 생각하는 딱 그만큼만 봐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 과장해서 말하는 것을 보면 그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아 삐죽거린다. 나 같으면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이런 나의 이상한 결벽증은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쓴 글이 혹시 과장되거나 축소되거나 나쁘거나 좋게 포장돼서 진실을 덮고 있는 것은 아닐까? '쉰'이 되었을 때를 썼는데 진짜 내 글에서처럼 아련하고, 허탈하고 그리울 것 같고 그런가? 남편과의 일화를 쓴 글처럼 정말 남편을 무진장(?) 사랑하고 남편은 귀엽고 자애스러운가? 글처럼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애달프고 그런가? 물론 그 글이 온통 거짓이고 별 고민 없이 썼다는 말은 아니다.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했고, 생각을 추스르고 떠나려는 파편들을 얼른 주워 담아 글로 옮긴 적도 많았다. 그리고 노트북의 '타닥타닥' 소리에 의지한 채 한 시간 두 시간 집중하고 집중해서 쓰인 글도 있었다. 그런데도 뭔가 석연치 않고 뒤통수가 따가울 때가 있다. 무엇이 이토록 찜찜함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50점 정도의 슬픈 내 마음을 썼는데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 마음이 90점인 것처럼 해석해서 '글 읽고 울었다', '너무 귀여운 남편이다'라는 피드백을 줄 때,  과한 칭찬을 들었을 때 바로 그런 지점이 내가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은 때다. 처음엔 '어, 뭔가 소통이 되나 보네' 했던 것들이 어느샌가 점점 부담감이 되면서 내가 어설픈 글 거짓말쟁이 같은 느낌도 들고 다른 사람을 속이려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상품을 광고하면서 나쁜 점은 쏙 빼고 좋은 점만 부각해 판매를 부추기는 것처럼 말이다.

 의도는 없다 하나 내가 가지고 있는 글의 결벽증으로는 딱 내가 생각한 그만큼만 읽은 사람들도 느껴줬으면 좋겠고, 글 속의 나와 현실의 나를 다르지 않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가끔 나 스스로가 글과 현실의 간극을 느끼고 있기에 글로 소통하는 시간들이 조금은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작가가 쓴 글의 감정과 느낌을 독자가 그대로 흡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내 손을 떠난 글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려 하지만 뭔가 내 마음 흡족하게 설득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고민하게 된다. 글이란 무엇일까하고 말이다. 읽고, 사고하고, 쓰고, 체득화 하고, 행동하고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 그것일까? 


  얼굴과 마음은 썩어 들어가는데 마냥 웃고 있는 각시탈처럼, 덤덤한 마음인데도 마치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슬픈 표정을 짓어야 하는 무대 위의 광대처럼. 본모습을 숨긴 채 포커페이스로 승패를 보려는 도박꾼들처럼. 내 글이 가면을 쓴 채 정직함을 넘어서고 진실을 포장하려 한다면 그건 글이 아니고 치기 어린 주정일뿐이다.  


 내 마음과 생각과 시선을 담백하게 그대로 그려내고 싶다. 거울처럼, 들여다보면 그대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얕은 개울물처럼 내 몸을 그대로 투영해 주는 X레이처럼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누군가 미우면 미운대로. 그렇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쓴 글 속 내 마음이 오롯이 독자들에게 양념 치지 않은 채로, 원재료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제 모습 그대로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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