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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Dec 24. 2020

[예능 소도리]심사위원을 한다는 것

-'싱 어게인' 누가 누구를 심사하는 거야?-

우리나라에 이렇게 끼가 많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싱어게인', '미스 트롯', '트롯 전국체전', '로또 싱어' 등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 어느 때보다 인기다. 그 시작은  '슈퍼스타 K'였다. 내가 예능에 대해 잘 꿰고 있지 않으므로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슈퍼스타 K'는 전 국민의 오디션 프로그램이라 불릴 만큼 가수의 꿈을 가진 수많은 이들의 등용문이었다.

 '슈퍼스타 K'가 처음 시작됐을 때 엄마는 민속무용단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평생을 밭에서만 일하시다 느지막이 무용단을 알게 되어 춤도 배우고 봉사로 공연도 하고 했었는데 어느 날 '무슨 K'에 나간다며 일찍 집을 나섰다. 내가 아무리 이름을 맞혀보려 했지만 방송은 방송인데 무슨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근데 그날 저녁 H호텔에서 하루 종일 대기했다가 심사위원이 "어르신들이 나올 프로그램이 아니다. 잘못 알고 나온 것 같다, 여기와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말만 들었다며 괜히 나갔다고 툴툴 대시는 엄마의 말을 별거 아니겠지 그냥 넘겼었다. 그리고 뜬금없는 방송 출연이라니 설마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호기롭게 나간 프로그램이 '서인국'과 '허각'을 배출한 '슈퍼스타 K'였다니. 그 프로에 엄마가? 왜? 어안이 벙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프로를 잘 몰랐던 어떤 기자가 무용단을 취재 왔다가 권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네 엄마들은 제주도 전통 옷인 '갈중이'를 입고 제주 전통 민요인 '니영나영'을 불렀다는 거다. 맙소사! 후에 그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고 우리 가족은 포복절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할머니 세 분이서 '니영 나영~ 두리둥실 나영~'을 불렀으니 심사위원들은 얼마나 어리둥절했을까. 그 황당함이라니. 하지만 예선이 끝나고 한동안 엄마의 모습이 홍보 영상에 나왔고, 그 프로를 보신 분들의 안부전화를 받았다. 거제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외사촌 동생은 우리 고모가 제일 이뻤다며 대단하다 전화를 걸어와 또 한바탕 엄마의 무용담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엄마가 만났던 문제의 심사위원은 이승철이었다. 날카롭고 냉정한 심사로 정평이 나있는 그였지만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어르신들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썰렁한 분위기를 다독이며 마무리를 해줘서 그나마 너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 중 내 눈을 끄는 건 '싱어게인'이다. 재야의 고수나 무명 가수들에게 다시 한번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 그래서 가수 스스로 '나는 ~~한 가수다'라고 명제를 짓는 것도 신선했고, 탈락은 하지만 그 가수의 이름을 돋보이게 해 주는 포맷이 고마웠다. 그리고 진짜 오디션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 노래 부르기 전 준비 모습도 가감 없이 내보냄으로써 출연자들의 긴장감을 함께 느끼게 만든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 하나 알리자고 얼마나 많은 기회를 갈망하며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무대공포증을 이기기 위해 나온 가수, 노란 신호등 같은 가수, 다른 가수의 승승장구가 배 아픈 가수, 생태계를 교란시킨 가수, 같은 멤버의 죽음을 봐야 했던 웃을 수 없는 가수, 어머니에게 무대에 선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최고령 가수 등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들이 갖고 있던 스토리와 실력은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일찌감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 그 꿈이 힘들다 느끼는 사람들에게 도전이란 산을 등반하는 이들의 모습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바로 전 시간엔 심사위원들을 향한 반란의 무대를 선보인 30호와 63호의 멋진 대결은 심사자들을 패배자로 만들겠다는 각오만큼 통쾌한 한 방이었고, 1호 가수와 45호 가수의 듀엣 무대에선 서로를 배려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이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너무 힘들었다. 이 무대 한 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했을 것이며 얼마나 꺼내기 어려운 용기를 내야 했을 것이며 얼마나 내려놓고 싶지 않은 자존심을 버려야 했을까.


 그래서 더더욱 심사는 공명정대해야 한다.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칭찬할 수 있다는 강형욱의 말처럼 냉철한 기준과 실력을 갖춘 심사를 해야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다른 방송과 달리 '싱어게인'은 중견 가수들과 주니어 가수들을 골고루 배치함으로써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심사평을 기대한 것 같다. 물론 모두가 가수이기 때문에 (물론 작사가도 있었지만) 대부분 잘하는 참가자들을 바라보는 의견엔 일치를 보였고, 불합격이더라도 자신의 보는 심사기준을 밝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이승기의 자연스런 사회와 심사위원들의 진지한 태도는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 신뢰감이 들기도 했다. 특히 다시 노래를 하고픈 가수들을 대하는 젊은 심사위원들의 솔직하고 조심스러운 심사평과 따뜻한 태도는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잘한 부분엔 얼굴을 찡그리거나 '미쳤다', '찢었다' 같은 말로 공감을 했고, '멋지다'거나 '울컥했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들이 갖는 부담감은 선배 심사위원들에 비해 몇 배 더 큰 것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선배 가수들과 일선에서 만나 함께 공연했던 가수들을 심사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중압감으로 다가올까. 단지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는 이유가 실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했는지 타당성 있는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심사위원들은 그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신세대답게 출연자들의 노래에 리듬을 타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무명 가수들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며 방송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무대에 대한 갈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실력과 경험을 두루 갖춘 중견 가수들의 따끔한 충고와 조언은 출연한 이들에 대한 애정 어린 지적이어서 도전자들에게도 귀한 공부가 되었으리란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건 혹시 '싱어게인' 도 그동안 보아왔던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오디션에서 막강한 실력을 검증받은 가수나, 너무도 유명한 가수들의 예상치 못한 탈락으로 반전을 노리거나 우승 후보들이 한 번은 탈락하는 좌절을 겪고 부활한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법칙 아닌 법칙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그런 실수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서 눈물도 한 움큼, 재미도 한 숟갈, 위기와 감동도 한 번 있어야 하기에 여러 장치들을 고안하고 있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몇 년째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오던 출연자들을 희생양으로 한다면 그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오디션 프로이지만 장르가 다른 '미스트롯2'인 경우 트롯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선두주자이면서도 그 진행 방식이나 심사위원들의 태도에 조금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미스트롯2'인 경우 심사위원들 중엔 비전문가들이 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 개그맨과 MC, 방송인도 있다. 물론 딱딱해지기 쉬운 프로그램을 재미와 끼로 완충시키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고 전문적인 가수로서의 실력과 퍼포먼스 쪽에 대한 점수를 매기고, 이들을 관객이라고 볼 때 어느 만큼의 공감을 얻느냐를 심사한다면 그런 배치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도 잠시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미스트롯2'의 1회에서 초등부들의 경연을 지켜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천재라는 칭찬과 계급을 떼고 심사를 봤다는 심사위원들의 얘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딘가 조금 불편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반드시 동요만을 불러야 한다는 선입견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제 나이 몇십 년 전 노래를 열창하는 모습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고 하면 돌 맞을까? 대회가 끝나고 올 하트를 받지 못하는 출연자가 울음을 터뜨리고, 한 명만 떨어뜨릴 수 없어 급기야 모두를 합격시킨 것 같은 그 심사에 모두들 수긍하고 있을까? 그리고 가수로서의 자질과 실력만을 우선으로 하는 한 명의 심사위원에게 쏟아지는 원망이나 안타까움의 눈길은 왠지 모를 화가 치밀게 하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이니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심사를 볼 거면 다른 출연자들의 긴 시간과 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명 배우, 무명 가수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흘린 땀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그 무대에 오르기까지 거쳤을 고민의 밤을 되뇐다면 뭔가 좀 더 확실한 심사 기준과 동등한 눈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거기에 미스터 트롯 6인방의 심사. 지금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과, 오랜 경력이 있으나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한 가수들을 심사하는데 바로 지난 분기 입상한 그들이 심사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트롯 맨들의 실력이 부족하거나 그들의 경험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난 그들에게 여태껏 박수를 쳐 온 사람이다. 하지만 심사를 받아야 하는 쪽을 배려한다면  중학생인 심사위원에게 하트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실제로 '싱어게인'이나 '미스트롯 2'에서 말 몇 마디 하지 않고 리액션과 합격 불만 키고 있는 심사위원도 많다. 바꿔 생각해 보면 그들도 평가를 내리기가 얼음장 밟는 듯하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힘들 거란 생각이 들지만 심사위원을 선정할 때 신중하게 고려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예능이어서 재미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장치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수들의 감동 스토리와 뛰어난 노래 실력, 거기다 공정한 심사평이 조화를 이루어야 시청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하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형식을 다양화하고 자기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가수들이 보여줘야 할 것이 노래 실력 못지않는 무대 매너와 퍼포먼스라면 그리고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라면 더더욱 많은 이들의 끄덕임을 받는 평가와 심사위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냉철한 칭찬과 따듯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모범이 되는 심사위원, 출연자들을 배려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심사위원이 되어서 미래에 빛날 원석을 찾아주고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그런 감동의 순간을 봤으면 하는 것이 열혈 시청자로서의 생각이다.  


*소도리는 '제주어'로 '말전주하다' 즉,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좋지 않게 하다, 남의 한 얘기를 하는 것, 고자질하다 등의 말로 쓰입니다. 저는 남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고 제가 느낀 생각을 이야기하다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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