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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Jul 02. 2020

프레데터인 유진의 고백

      -'종의 기원'을 읽고-

 나는 최상의 포식자 프레데터다. 이모가 말한 것처럼 두려움도 없고 불안해 하지도 않고, 양심의 가책도 없고 남과 공감하지는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은 귀신처럼 이용하는 종족. 도덕 관념보다는 이익과 손실을 따지는 나는 그날, 4월 16일, 부모님의 열한 번째 결혼기념일, 가장 행복해야 할 그 순간에 내 형을 해치웠다. 나와 형은 어릴 때부터 같은 학교, 같은 학년, 같은 반이 되면서 매 순간 모든 면에서 비교되며 자랐다. 형은 줄곧 1등을 달렸지만 나는 외톨이였으며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내 형 한유민은 그렇게 나의 언덕이자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넘을 수 없는 벽이 베푸는 언덕의 역할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어느 누구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날 서바이벌 게임에서 형은 평소의 형답지 않게 관용이 없었다. 그리고 비겁했다. 총알을 다 써버린 형은 마지막 몽돌까지 사용하는 술수를 부렸다. 아마 나에게 지는 것이 용납되지 않은 모양이다. 항상 나에게 언덕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것은 내가 형의 밑에 있을 때만 허용되는 거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내가 형을 이기려 하는 순간, 형과 엇비슷해지려는 순간 그 언덕은 나를 밀어뜨리는 벼랑으로 변하고 말았고 느닷없이 날아오는 돌을 맞은 순간 나는 형을 용서할 수 없었다. 게임의 룰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비겁하고 이렇게까지 나를 이겨야 했던 형을 보자, 난 다시 포식자로 돌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형의 손에 쥐어진 새총을 뺏으려고 몸을 날렸고 마지막 돌을 피하려 했던 나의 정당방위는 형을 절벽 밑 바다 밑으로 밀어 놓고 말았다. 난 정말 형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나는 그날 그 사건으로 사랑하는 아빠도 잃어야 했다.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장례식 내내 잠을 잤고 눈을 떴을 때 내 입에선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은 제발 나를 벌하지 말라고, 제발 나를 버리지 말하는 나의 절실함이었다. 엄마는 내가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자식이라는 이유로 나를 품었지만 엄마의 눈은 싸늘했다. 엄마는 나를 믿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엄마는 나와 엄마만 이 세상에 남겨졌던 그날, 내가 형의 가슴을 때리고 발로 차서 바다에 빠뜨렸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리해야 하는 사이코패스로 규정짓고 나를 감시하고 나를 보호했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이 핏줄의 굴레에 빠져버린 지긋지긋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공범자인 나의 이모.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이모의 처방은 내가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엄마의 감시를 받게 했으며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질 않았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고 유일하게 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수영에서 멀어지게 했으며 필사적으로 수영만은 계속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매달려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그때도 내 몸엔 나도 모르는 약물이 내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 몰래 약을 끊기도 했고, 약에서 해방되는 순간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은 내 편이 아니었는지 약의 부작용은 가장 빛나고 싶었던 날, 나를 가장 비참한 패배자로 만들고 말았다. 그렇게 내 인생은 어머니와 이모가 깔고 앉은 방석이었다.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엄마는 나를 원하지 않으셨다. 집 없는 어미 고양이를 보면서 나를 낳기로 결심했고, 항상 바쁜 부모님 틈바구니에서 그리고 불과 12개월 차이 나는 형과의 비교 속에서 자랐다.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에겐 항상 나보다는 형이 우선이었고, 형이 먼저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또 다른 나를 키워 나갔다. 그래서인지 비뚤어진 나의 감각은 비린 피 냄새에 예민했고 야밤에 겁에 질려 있는 것을 쫓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면 결론은 항상 주검으로 끝이났다. 마치 야수가 먹잇감을 노리고 접근하는 것처럼 나도 내 본능에 이끌려 그렇게 그들을 하나씩 해치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 또 다른 엄마였고, 이모였으며, 형이었다. 나의 살해 장면을 목격하고 분노에 치밀어 함께 죽자는 엄마의 목을 그어 버린 것도, 내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했던 엄마의 행방을 찾으러 왔던 이모를 향해 달려들었던 것도,  자수시키려던 내 의형제인 해진이를 차와 함께 수장하여 내 죄를 모두 덮어 씌운 것도 나는 내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기에 크게 잘못했다거나 죄의식을 느끼진 않는다. 나는 살아야 하니까.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말이다.

 나는 새로운 인간 종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들이 나를 옥죄지 않았다면 그들이 나를 조종하려 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나를 한시도 가만 두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운동을 하면서도 가장 편해야 할 집에서도. 그래서 난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막으로, 참을 수 없는 나만의 희열을 위해 내 본성을 음습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지금 나는 혼자다. 나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내가 의지했던 이들도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 지금부터 나는 이 세상 어딘가에 조용히 납작 엎드리고 있다가 새로운 먹잇감이 생겼을 때 쥐도 새도 모르게 그들을 싹쓸이해 나갈 것이다.                                                                                     -한유진-



 작가는 '한유진'이라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켰다. 그 종의 기원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인간의 악의 근원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숨 가쁘게 달려야 했던 짧은 호흡의 문체는 사건의 긴박함과 어울려 읽는 내내 긴장을 유지하게 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이런 악의 새로운 종은 없을 거라 믿고 싶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만 할 순 없었지만 바이러스가 변종이 되고 또 다른 신종을 탄생시키듯 인간의 악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진화해 오고 훨씬 강력해졌다.  

 책 속에서 내가 만난 '유진'이는 특별한 사이코패스라고만 단정 짓기 어렵다. 그는 이기심으로 다른 이를 외면했던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허망한 욕심에 눈이 멀어 황폐해져 가는 내 마음이기도 하겠고, 기필코 이기고 말겠다며 비겁했던 헛된 경쟁심이기도 할 것이다. 다소 충격적이고 외면하고만 싶은 내용이었지만 그것이 특별함이 아닌 '나'이기도 하기에 우리 내면의 어두운 면을 숨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이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떠들썩한 뉴스엔 '유진'과 같은 새로운 종의 탄생에 공포와 탄식이 넘쳐나고 있다. 인간이길 거부한 것 같은 'N번 방 사건'이 그러했고,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몰염치한 여자의 범죄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세상을 보고 있자니 새로운 종은 바로 '우리'가 낳고 키우고 번식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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