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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Oct 09. 2020

유머와 진실 사이

-'나라 없는 사람'을 읽고-

미국 최고의 풍자가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인 '커트 보니것'의 '나라 없는 사람'은 어쩌면 지금의 2020년을 예견하고 쓴 책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그 시대 미국의 정치인과 환경, 자신이 겪었던 전쟁을 재치 있는 유머와 블랙 코미디로 풍자하며 비판했던 내용과 질문들이 지금 이 시대에 맞지 않았으면 좋았을 대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커트 보니것은 어렸을 적부터 웃음의 포인트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대공황이었던 그 시절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코미디를 보며 고단한 시절을 극복하려 웃음 코드를 배웠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그러면서도 그는 웃음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했다. 웃음은 때론 두려움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웃음 중엔 얄팍한 웃음이 있어 곤란한 주제를 전혀 건들이지 않는 약사빠름이 있고, 농담 속에도 뼈아픈 비극이 배어 있는 그런 웃음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코 웃음의 소재로 아우슈비츠를 쓰거나 케네디나 마틴 루터 킹의 죽음을 희화화하지 았았다. 그러면서도 웃음이 불안한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안도를 갈구하거나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라 여겼다. 그리고 실제로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 농담을 프로이트의 말을 빌려 '블랙 유머'라 칭했다. 전쟁 포로로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때의 경험을 쓰지 못했던 것도 웃음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전쟁의 추함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었던 심정을 남 얘기하듯 그렇게 쓰고 있다.

또한 그는 미국 사회를 비판하면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인용하여 미국 안에만 있는 민주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들며 돈에 대한 애착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하는 나라가 미국이라며 석유를 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했다. 석유를 쓰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은하계 전체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이 친절한 행성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준 일로 인간은 화석 연료를 쓰게 되었으며 이백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푸른 행성인 이 지구를 무참히 파괴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내일이 없는 양 물과 공기를 비롯한 지구의 자원들을 흥청망청 써 버렸고 그 탓에 정말로 내일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킬고어 트라우트와의 전화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 지구의 면역 체계는 AIDS,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그러면서 너무 많은 충격과 실망을 겪은 탓에 더 이상 유머로 방어를 할 수가 없고 농담을 못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위안을 주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사실 목차를 봐도 알겠지만 이 책은 한 가지 주제를 확장시켜 가며 심도있게 다루거나 시간의 순서대로 내용을 정리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생각나는 상황이나 생각을 그때 그때 정리하고 표현한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너무도 다양하고 넓은 방면의 그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반면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내용을 따라갈 수 없는 어려움도 느꼈다.

 그리고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그는 정치와 정치인,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어린석음, 추잡한 지도자들의 일면을 볼 수 있었던 베트남 전쟁, 전쟁의 참상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재미있다고 덤볐다가 한쪽이 서늘해지는 미소를 지을 때처럼 두려운 것은 없다. 보니것은 실망스런 것들에 대해 설득하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농담과 유머로 그것들의 잘못을 꼬집고 비판하여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자신을 붙잡으로 했던 것 같다. 이상한 나라에서 이상한 채로 살지 않으려면 웃음으로 희하하는 수밖에 없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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