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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Oct 17. 2020

마지막 테우리의 고백

-'마지막 테우리'를 읽고-

치밀하고 정교한 문체가 압권이다. 그러면서도 오름의 초원과 초겨울의 풍광이 세밀하게 묘사되면서 마치 내가 그 오름에서 공동목장의 고순만 테우리를 바로 앞에서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40여 년이 넘는 시간이 버무려져 마지막 테우리 고순만 노인의 삶을 통해 제주 4.3의 아픔을 긴장감 있고 밀도 있게 그려낸 이야기였다. 사건은 단순하다. 고순만 테우리가 오름에서 소를 보다가 옛 4.3의 기억을 떠올리고 잠깐 한눈 파는 사이 급변한 날씨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친구 현태문의 환청에 정신을 차리고 소의 발자국을 따라 오름을 내려온다는 이야기. 소설은 내내 오름의 정경에서 과거의 흔적을 떠올린다.

 고순만 테우리의 과거엔 고문의 후유증으로 폐병에 걸린 현태문의 이야기가 있었고, 마을 소개작전이 시작되면서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과 소들의 죽음을 묻어두었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노인의 비밀 하나를 감춰두고 있었다.  

 테우리로서 오름 초원에서 소들을 돌보며 있었던 고순만을 통해 작가는 4.3의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나라를 세우려면 통일 정부를 세워야지, 단독정부가 웬 말인가." (20쪽)  


 해변의 인간 잡사보다 초원의 야생을 좋아했던 테우리 고순만이 만난 4.3이라는 풍랑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저항이었으며 슬픔이며 자책이었다. 산으로 쫓겨온 사람들을 위해 소를 지켜야 할 테우리가 소의 가죽을 덮어쓰고 소사냥을 해야 하는 백정 노릇을 해야 했고, 소의 뜨뜻한 내장 속에서 동상 걸린 발을 녹여야 했고, 토벌대에게 잡혀 우연히 발견한 굴을 발고한 것이 손주를 데리고 있고 노부부를 죽음으로 몰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사태(고순만의 표현)가 끝난 후에도 고순만은 굴에 연기를 넣을 수 없고 말똥 버섯들을 캘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고순만에게 오름은 과거를 회상하게 하며, 아픔을 되새기게 하며 자신의 짊어져야 할 업보라 생각하는 곳인 동시에 안식처이며 어지러운 세상을 등진 자신만의 낙원이었다.


 "노인은 해변의 인간 잡사보다 초원의 야생이 좋았다. 초원은 옛 바람이 그대로 불어와, 법 밖에 세월밖에 존재하는 양 생활이 임의로웠다. 구름 자락이  와 닿는 오름 위에서 땟자국 눌어붙은 것 같은 해변의 도시와 마을들을 바라보노라면 자신이 마치 다른 나라 백성인 듯이 여겨지기도 했다." (17쪽)


 그리고 고순만이 사랑했던 그 오름은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아픔이 아물기도 전에 이제 또다시 골프장 개발이라는 고비를 맞고 있음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제주도민에게 4.3은 때론 밖으로 내뱉으면 안 되는 금기였다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끼리의 갈등이었다가 화합이었다가 지금은 상생으로 가는 길을 열고 있는 중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선배들과 4.3에 대한 분임토의를 하고 집으로 내려오다가 불심검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잠깐 가방 좀 보자며 접근한 경찰은 4.3에 대한 유인물을 발견하고 나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교통규칙도 한 번 어겨보지 못한 새가슴인 내가 4.3 때문에 경찰서에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리둥절하고 잔뜩 겁을 집어 먹고 있었는데 한두 시간쯤 지나자 경찰서 안은 대학생들이 노는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무서움의 단계를 건너자 항의의 차례가 되었고, 그도 안 되니 게임을 하며 노는 수밖에. 이래 저래 반나절 정도를 있다가 나왔는데 진작에 읽었어야 할 소설을 이제야 집는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고, 혼자 풀어서도 안 되는 숙제이며 모두가 만족할만한 답이 없는 제주의 4.3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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