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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Feb 08. 2021

돌고래를 만나다

-올레길에서 만난 돌고래를 보며-

"저기 돌고래 안 보염수광? (안 보여요)?"

정말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신년 계획마다 빠지지 않았던 올레길 완주. 2021년 나의 버킷리스트가 또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드문 드문 걸었던 올레길은 빼고 가보지 않았던 곳을 가기로 하고 3-B 코스를 가 보기로 했다. 3-B코스는 원래 온평 포구에서 시작했어야 하는데 우리는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 해변부터 걸어보기로 했다. 작년 남편과 함께 나들이 삼아 왔었는데 오늘 와 보니 그곳은 다시 새로운 옷을 입고 있었다. 겨울 날씨라고 보기엔 드문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평화로운 날, 코로나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기분 좋은 상쾌함이 밀려왔다. 이런 자유로움을 얼마 만에 느끼는지 모르겠다며 배낭 하나 둘러메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였다.

 바닷가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빈 택시 하나가 자꾸만 우리 쪽으로 속도를 멈추더니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싶었다. 택시를 타겠다고 손을 흔든 것도 아닌데 왜 자꾸만 길 옆으로 다가오는지 의아했다. 처음 속도를 멈출 땐 차에 탈지 물어보는 거였나 싶었는데 두 번째로 가까이 왔을 때 택시 기사는 기어이 차에서 내려 우리들에게 손짓했다. 돌고래가 안 보이느냐고.

 순간, 내 목소리가 올라갔다. "돌고래요? 어디요"

아, 있었다.  햇빛에 부서져 반짝이는 바다 한가운데 동그란 선 같은 것이 생기더니 갑자기 검은 물체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점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몇 마리가 떼를 지어 바다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이제껏 아쿠아리움이나 코엑스에 가서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이때, 기대하지도 않았던 이곳에서 돌고래를 보다니! 살아있는 조련되지 않은 돌고래라니! 몇 마리가 함께 유영하며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그 유연함이란 봐도 봐도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고래가 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감탄하고, 사라지면 아쉬워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자유롭게 바다를 휘저으며 방향을 바꿔 이리저리 놀다가는 돌고래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한국어 강사를 한 지도 사 년째 접어들었다.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정말 귀한 경험이었다. 처음 수업을 하던 날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고, 낯선 이름과 성에 버벅대기 일쑤였고,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전원 일어나 나를 맞는 베트남 학생들의 절도 있는 행동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여성의 날, 각국의 스승의 날에 케이크와 꽃을 선물 받으며 감동을 했던 기억도 있었고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되기도 했다. 함께 문화체험을 하고, 체육대회를 하고, 알뜰 장터도 열었고, 학교 축제에서 몽골의 음식을 함께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팔아보기도 했다. 축제가 끝나고 모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던 시간들, 학생들과 모두 강당에 모여 반별 윷놀이 대회와 제기차기 대회를 열었던 일도 있었고, 수료식을 하며 섭섭해했던 기억도 있었다. 몇 마디 배운 각 나라의 인사말이 신기하면서도 어눌한 발음에 웃음보가 터진 적도 있었다. 서로의 문화가 달라 머리를 만지면 실례라든가, 술 마시는 예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슬람 문화권 학생들은 남자 친구가 많다는 나의 말에, 맥주와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했고, 매번 예쁜 선생님이 누구냐는 질문에 정해진 답을 내놓으며 함께 웃기도 많이 했다.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전통 옷을 선물하는 거라며 기어코 내 손에 선물을 안기던 녀석도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베트남 반미와 홍게를 포장해서 가져온 학생, 중국의 향신료와 판다 인형을 받고 아이처럼 좋아했던 순간도 있었다. 베트남을 여행한다니 베트남 돈을 내미는 학생도 있었다. 가서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오라고. 다낭을 갔다 오고 나서 함께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아 수업이 더 풍성해졌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많은 기억이 새로웠던 삼 년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강의실엔 나라 간 다툼이 없었고, 긴장이나 갈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 중국, 몽골, 우즈베크, 베트남 학생들이 서툰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했고,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 주며 친구가 되어 갔다. 물론 월드컵 땐 조금 달랐다. 경기 결과에 따라 웃고, 화를 내고 그랬으니까. 이미 몇 건의 초대를 받았고, 몽골과 베트남과 우즈베크 여행을 하기로 약속을 한 터라 시간만 맞추면 되었는데 코로나와 학교에 겹친 악재 때문에 일 년이 넘게 학교를 쉬게 됐다. 지금은 그냥 학기가 끝난 것만 같아 실감이 나지 않지만 3월이 되어 오전에 출근을 하지 않게 되면 그땐 허전함과 씁쓸함이 밀려들 것 같다.  

  


 바다에서 이리저리 맘껏 헤엄치던 돌고래처럼 나 역시 학교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다. 돌고래가 바다를 떠날 수 없듯, 헤어지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듯, 꼭 붙어 속도를 맞추듯. 나도 우리 학생들과 한국어라는 멋진 선물을 함께 하며 걱정 없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결혼할 때, 그들이 제 나라로 돌아갈 때 기꺼이 축하해 주고, 응원해 주며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사진 속에 담겨 있는 날들을 되새겨 보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며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고, 그들의 꿈을 지지하며 내가 꿈꿨던 시간들이 덩달아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지는 것을 경험했다.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올레길에서 만난 돌고래 덕에 기분이 한껏 나아졌다.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게 우리를 유혹하듯 한참을 놀던 돌고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지며 올 한 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큰 탈 없이 잘 가고 있을까. 다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푸른 세상을 맘껏 헤쳐가는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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