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제주를 돌아다녀 보면 하늘하늘 시폰 원피스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청춘들을 볼 수 있다. 예쁘다. 아마 지금쯤 낯선 제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할 것이다. 아마 며칠을 설레었을 것이고, 계획했을 것이고,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그들을 들여다보면 모두들 하나 같이 이리저리 나부끼려는 치맛자락을 붙들고 몸을 웅크린 채 한 손으로 모자를 눌러쓰며 길을 걷고 있다. 친구 뒤에 종종 걸음마하기도 하고 두 팔로 자기 어깨를 부비기도 한다. 아예 뒤를 돌아보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다. 봄인데 추워 보인다. 4월인데 마치 초겨울을 보는 듯 조금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다. 그녀들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범인은 '바람' 그 녀석이다. '바람', 특히 제주의 바람은 매섭고 차다. 지금이 4월 중순, 유채꽃이 피고, 벚꽃이 피었다가 지고, 동백꽃이 저물어 가는데 여전히 바람은 봄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미 봄이 왔음에도 나만 아니라는 듯 그렇게 겨울바람의 차고 날카로움을 거두지 않는다. 이것이 제주다. 그래서 제주시에 살고 있는 나는 제주도가 따뜻한 곳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의문을 갖는다. 정말 이곳이 그들의 말처럼 따뜻한 곳인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야자수 같은 이국적인 나무와 푸른 바다가 보이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꽃들의 살랑거림에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한 해 한 해를 살다 보니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에게 제주는 춥고, 싸늘하고, 알싸한 곳이다.
여름엔 정말 덥잖아요? 여름은 덥다. 이젠 점점 습한 기운이 많아져서 에어컨 없이 여름 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어렸을 적만 해도 시원한 마루에 있으면 한여름의 더위쯤 아무 걱정할 게 없었고, 개역(미숫가루)에 얼음을 동동 띄우거나 수박에 된장을 발라 먹으면 이쯤이야 가소로웠다. 그런데 지금은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정말 몇 시간도 견디기가 어렵다. 에어컨을 끄면 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기 일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해야 한다. 그러다 장마라도 길어지면 각 집 안에선 제습기 가동으로 아파트 단지가 바쁘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여름에 부는 제주의 바람은 그리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 가득 습기를 머금고 있고 정신없이 불어닥치는 바람을 피해 집안으로 들어서면 헝클어진 머리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있다. 거기다 예고 없이 불어닥치는 태풍의 위력은 정말이지 매섭다. '개미', '나비'처럼 작고 예쁜 이름을 붙이면 뭐하는가. 태풍이 큰 피해를 입지지 않고 무사히 지나기를 바라서 이름을 지었다곤 하지만 이름과는 반대로 태풍은 제주도 온 섬을 엉망진창으로 해놓고 나 몰라라 나가 버린다. 그래서 제주는 태풍의 경로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동쪽으로 태풍이 빠져나가는지 서쪽으로 빠져나가는지에 따라 그 영향력과 위력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보통 동쪽으로 치우쳐서 갈 때가 태풍 피해가 더 심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태풍이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가니 이젠 태풍만 오면 학교들이 모두 한순간 얼음이 된다. 어느 핸가는 슈퍼 태풍 버금간다고 해서 집집마다 유리창에 신문지를 붙이고 난리도 아니었다.
십여 년 전, 대학원 졸업 시험을 하루 앞두고 태풍이 몰아쳤다. 한참 모범 답안을 만들고 외우는 중에 그만 정전이 되고 말았다. 제주시 한복판이었는데 정전이라니. 정말 난감했다. 때아닌 양초를 찾아 불을 켜고 전기가 다시 들어올 동안 공부를 하며 실없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형설지공도 아니고, 2010년에 촛불 밑에서 공부라니. 거세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차라리 내일 불어서 시험이 며칠 더 연장됐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태풍이 지나고 나면 제주도는 가로수와 도로도 문제지만 해안 지역과 감귤밭의 근황에 가장 촉각을 곤두선다. 감귤꽃이 모두 떨어져 버리지는 않았는지, 시기에 따라 감귤의 생태에 농민들의 걱정이 생기고, 해안가 양식장의 넙치는 어떤지 온종일 뉴스가 바쁘게 소식을 전한다. 가끔은 태풍이 바다를 뒤집어 놓아서 바다가 깨끗해지고 좋아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바다에도 바람이 분다 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본격적인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고 쌀쌀해진다. 겨울과 함께 바람의 세기도 더 강해지고 날카로워져서 얼굴이 칼에 베일 듯 아프기까지 한다. 억새가 바람에 휘날리고, 낙엽을 쓸어가고, 파도를 일어서게 만들어 하얀 포말을 던지게 하는 겨울바람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에 '펄펄' 곱게 내리는 눈이나 '쏴쏴' 땅 아래로 곧장 떨어지는 비는 상상하기 어렵다. 때론 대각선으로 빗금처럼 치기도 하고, 휘몰아쳐 내리기도 하고, 사방팔방에서 눈과 비의 공격으로 우산이 소용없을 때도 많다. 제주의 바람은 이렇다.
그래서 바람의 신 영등할망 이야기가 재밌다. 영등이 드는 음력 2월에 바람의 형태에 따라 영등할망이 딸과 함께 왔는지 며느리가 같이 왔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로 들어온 영등신이 바다의 씨인 해초와 해산물을 뿌려주고, 밭마다 곡식 씨들을 뿌려주고 가는 보름 동안 바람이 온화하고 따뜻하면 딸과 함께 왔다고 믿고 바람이 세고 거칠고 날이 궂으면 며느리와 함께 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딸과 며느리에 대한 어긋난 평가이긴 하지만 과거 제주 사람들은 그렇게 위로하며 바람을 맞이했다.
바람에 가장 민감한 것은 제주의 해녀다. 대상군 해녀쯤 되면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바람의 세기로 물질할 수 있는 날인지 하지 말아야 하는 날인지를 가늠하여 바다에 갈지 안 갈지를 정한다. 그래서 해녀들은 영등신에게 치성을 들이며 정성을 다한다.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해녀가 없게 해 달라고, 바다를 풍요롭게 해 달라고, 바다에 좋은 씨앗을 많이 전해 주시라고 매년 제를 지내는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바다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괜한 욕심으로 바다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그것이 해녀들의 규칙이다. 그래도 그녀들은 바람이 불면 하염없이 바다를 쳐다보며 언제쯤 파도가 잔잔해질까, 몇 시쯤 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 바다에 대한 짝사랑을 놓지 않는다. 그녀들에게 바람은 경외의 대상인 것이다.
변덕스러운 바람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밭담을 쌓기 시작했다. 주변에 널린 것이 현무암이기도 하지만 바람으로부터 마소로부터 농산물을 보호하려면 돌을 쌓아야 했다. 돌 모양을 살펴 아귀를 맞추며 쌓는 것은 숙련된 장인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듯 보이지만 견고하고 단단한 것이 바로 제주의 돌담이다. 돌담은 그렇게 올레길을 만들고 밭의 경계를 만들고 무덤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졌다. 그 길이가 어마어마해서 흑룡만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제 돌담은 옛 제주인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어릴 적 큰어머니네 집으로 향하던 구불구불하고 좁은 올레길의 정겨움을 쌓아놓은 빛바랜 사진첩이 되어 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 , 제주는 해안선을 따라 바람을 이용한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고, 바람이 만들어 내는 오름의 절경은 많은 이들을 제주로 불러 모은다. 때론 바람이 미세먼지를 몰아내기도 하고, 야속한 바람이 비행기를 끊어 속을 끓게도 만든다.
지난번 가파도 청보리를 보러 간다며 아침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가 풍랑주의보가 떨어져 배가 출항하지 못해서 돌아왔다. 이젠 봄이니 산뜻한 옷을 입고 싶은데 아직도 아침저녁의 쌀쌀한 바람은 패딩 조끼를 벗지 못하게 한다. 공들여 매만진 머리가 바람에 산발이 되어 속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오랜만에 바다를 찾았다가 너무 추워 등을 돌린 적도 많았고, 바람 때문에 옷이 몸에 짝 달라붙어서 민망했던 적도 있었다. 수업엘 갔다가 기껏 만들어 놓은 우드락이 바람을 못 이겨서 부서져 버리는 통에 아연실색했던 경험도 있었다. 이런 미운 바람인데도 가끔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서,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들을 보면서 바람에 몸을 맡기는 억새를 보면서 나의 원망도 한순간 그렇게 날아가 버리는 경험을 한다.
바람 부는 제주에는 그 바람을 원망하지 않고, 삶의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여 바람을 맞아드리고, 그에게 빠져나갈 바람길을 만들어 함께 공생하는 제주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바람도 제주인 것이니 그리 섭섭해하지 말라, 원망하지 말라 다독이는 마음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엔 바람을 그리고 바람을 연주하고 바람으로 춤을 추는 제주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