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변호사의 하루
두 번째 공판 기일이 있는 날.
보이스피싱 수거책 사건으로 사기방조죄로 기소된 20대 초반의 여성이다.
그런데 재판 시간이 되어도 피고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판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법정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더니 발랄하고 큰 목소리로 전활 받는다. 목소리 톤이 심상치 않을 정도로 높고 재판 때문에 전화를 건 변호사에게 말하는 것 치고 너무 밝다. 또 말하는 중간중간 계속 웃는다.
"꺄~ 어떡해, 어떡해~ 재판인지 몰랐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 그래도 돼요? 어떡해 어떡해~"
양극성 정신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고, 의견서에도 그 사실을 썼지만, 지난 재판 땐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서 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 법정에 다시 들어가 판사님께 사정을 설명했다. 판사님도 흔쾌히 30분 뒤로 재판 시간을 늦춰주셨다.
30분 뒤.
다른 법정에서 재판을 끝내고, 커피 한잔을 마신 뒤 법원 건물로 들어서고 있는데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누군가 다다다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세라 언니~ 저기 세라 언니~!"
변호사를 세라 언니라고 부르다니. 그것도 저렇게 큰 목소리로.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서 인형처럼 회색으로 탈색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세라 언니~ 세라 언니~"하며 뛰어 오고 있는 것이다. 피고인은 내 앞에 서서 발랄하게 웃으며, "세라 언니, 잘 지내셨어요? 어떡해~ 재판인지 몰랐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법원에서 의뢰인에게 세라 언니라고 불려보긴 처음이었다. 놀라우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피해자와 합의도 마쳤고, 젊은 나이에 전과도 없었기에 중형이 예상되는 건 아니었다.
형사재판이 끝날 땐 검사가 구형을 하고, 변호인이 최후변론을 한 뒤, 가장 마지막으로 피고인으로부터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듣는다. 최후진술이라고도 한다.
조증 상태인 피고인이 최후 진술에서 무어라고 말할까 싶어 괜히 긴장이 되었다.
역시나 그녀는 박수를 짝짝짝 치더니...
"음- 여러분 성원에 감사합니다 잘 지내셨죠? 다들?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판사님, 실무관, 법원주사와 검사님까지 눈이 동그래져서 동시에 고개를 드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들이다.
내가 피고인이 지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드리니 비로소 판사님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판결 선고일에 잊지 않고 출석토록 변호인이 아침에 전화를 해주라고 덧붙이셨다.
피고인은 법정 밖을 나가서도 한참을 세라 언니, 잘 지내셨죠 다행이다 잘 지냈구나... 하며 내 손을 잡고 웃었다. 판결 선고날에 사무실에서 전화드리겠다고, 그날 꼭 나오시라는 내 얘기를 듣곤 고개를 끄덕인 뒤 같이 온 엄마 손을 잡고 총총 법원을 나갔다.
기록을 챙기며,
저런 의뢰인도, 저런 피고인도, 저런 최후진술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글빚는변호사, 김세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