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카 Feb 14. 2024

때를 기다리며(3)

누군가에게는 맞을지라도 내게는 맞지 않을 수 도 있다

생리가 끝난 며칠 후 처음으로 사용한 배란 테스트기는 한 줄은 진하고 한 줄은 연하게 나왔다. '오호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직접 배란 테스트기를 사용하여 육안으로 결과를 확인해보니 내일이면 무슨 선으로 나올지 결과가 사뭇 궁금해졌다.


배란 테스트기의 기나긴 설명서를 읽어보면 테스트기의 두 줄의 색이 진하게 나올수록 배란일이 임박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배란이 임박한 날은 임신 확률이 다른 날보다 매우 높다고 적혀있다. 그저 두 줄의 선으로 임신의 확률이 얼마나 높은지를 파악할 수 있다니 새삼 기술의 발전에 놀랄 지경이었다.


하지만 두 줄의 선명도를 기준으로 언제가 배란일이 임박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좋으나 아무리 봐도 육안으로는 수치가 몇 인지 파악하기 너무 어려웠다. 이리봐도 저리봐도 이 선이 그 선같고 그 선이 이 선 같았다. 다행히도 요즘은 육안으로 알기 힘든 테스트기를 파악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어플이 존재했다. 게다가 내가 처음으로 구입했던 제품의 경우에는 자체 어플까지 있어서 테스트기와 연동이 매우 수월했다. (너무 신기해!)


그런데 말입니다.. 남들은 수치가 높아지는 일자가 하루나 이틀정도 간다던데 나는 5일이 넘게 지속되는거죠?


검사하기 두 시간 전부터 물 한 잔 마시지 않고 제시간에 맞춰서 검사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내리 진한 두 줄이 뜨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많은 사용자들의 후기를 읽어보면 분명 검사를 할 때마다 어느 날은 진해지고 어느 날은 색이 연해져야 정상인 것 같은데 말이다.


몇 번째 정독인지 모를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설명서에 따르면 피크가 5일 연속으로 지속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의 몸은 모두가 똑같지는 않으니까. 내가 그런 특이한 케이스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며 일단 테스트기를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수많은 후기를 읽어보나 빼곡히 적힌 설명서를 읽어보나 분명 수치가 높은 날이 가장 임신 확률이 높고 누군가는 임신을 했다고 했으나 우리의 결과는 언제나 '글쎄?'였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소위 말하는 111이나 222의 과정들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없어졌다! (111은 배란 테스트기의 수치가 높은 일명 '피크일'이 뜨고 매일 부부 관계를 하는 것을 의미하고, 222는 테스트기의 피크를 확인하고 격일로 부부 관계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역시 참으로 놀라운 언어 재창조의 세계로다...)


심지어 부부 관계를 사람들이 숙제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러다보니 진짜 숙제처럼 여겨졌다. 학생 때도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것이 숙제였는데 이조차도 숙제라고 말하니 왠지 더 재미없어졌다.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아니 굳이? 이렇게까지? 왜? 벌써 지겨운데 병원까지 다니면서? 내가? 과연?'


그렇게 나는 임신과 관련된 생소한 용어를 통해 또 다른 세계에 대해서 배워나가며 물음표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때를 기다리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