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은 '농아인의 날'입니다
수어를 한다는 것
오늘은 6월 3일 농아인의 날이다.
농아인의 날이란?
농아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복해 자립을 도모하고, 밖으로는 농아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제정한 날
청각장애인을 장애인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제1의 언어로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어릴 적부터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사실 극히 드물다.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수어보다 구어가 익숙한 구화인들이 점차 늘어나는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보청기 기술이 좋아졌다고 한들, 모든 청각장애인들이 청인들처럼 100% 완벽하게 들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들을 수 있다 하더라도 청각장애인이라면 수어를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들을 수 있어서 필요 없는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수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어떤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상대의 입모양을 보지 않고 대화가 가능하고 소곤소곤 속삭이는 말소리를 무리 없이 듣는 청인들에 비해 청각장애인들은 평범한 대화 상황 속에서 조차 잘 듣기 위해서 그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들을 수 있지만 애매하게 들린다는 사실은 언젠가 청인들 틈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가져오게 만든다. 반면,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수어로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하고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나는 농아인이다'라는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들을 수 있지만 잘 못 듣거나 혹은 아예 못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들을 수 없지만 손으로 보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장애인이 아니라 수어로 소통하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게 한다. 이는 한계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만들며 자기 자신에 대해 당당함을 가지게 만들어 준다. 결국 수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게 한다.
사회에서 만나는 청각장애인들을 보면, 수어를 알고 모르고에서 나오는 저마다의 자신감이 남다름을 느낀다. 애매하게 걸쳐진 누군가는 늘 주눅이 들어있곤 했으나 자신이 누군지 잘 아는 친구들은 그들만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이처럼 농아인이라는 정체성이 있고 없음은 그들의 행동도 달리 보이게 한다.
특히, 농인 예술 극단 <핸드스피크>의 농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유튜브 영상으로 볼 때나 SNS에 올라오는 다양한 농인 청년들의 수어를 볼 때면 노래와 랩 그리고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 모습들이 어찌나 멋지던지! 그들이 만들어내는 손끝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는 언제나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청각장애인들이 농아인의 날을 맞이하여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미 수어를 알고 있다면 당신이 수어를 구사하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다시 한번 더 자부심을 가지는 기회가 되길, 그렇지 않다면 수어를 통해서 스스로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비장애인, 즉 듣고 말할 수 있는 청인이라면 '뭐야, 나와 상관없는 일이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농아인의 날에 대한 의미는 농인, 청인 구분 지을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지난날, 수어 강사로 활동하면서 수어를 통해서 삶이 바뀌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누군가는 우연히 배운 수어에 재미를 느껴서 아예 진로를 바꿔서 수어통역사가 되었고, 누군가는 자신이 배운 수어를 통해서 환자들과 조금 더 편리하게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누군가는 수어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의 짝을 만났기도 했다. 이는 수어를 배움으로써 그들이 존재하는 세상이 더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수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장애인이라고 비하하며 수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수어를 단 한 번이라도 배워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어는 언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농아인들의 언어를 이해하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말을 하는지 이해할 줄 알게 된다. 곁에 있는 소중한 누군가와 더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이 언어는 당신이 발 딛고 서있는 이 세상을 조금 더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농아인의 날을 통해서 수어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나와 같은 사람임을 인지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수어를 쓰는 '그' 역시 나와 동등한 인간임을 깨닫는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