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deaf?

by 리카

비 내리는 어느 날, 농극단 고고고 단원들과 함께 부산에 있는 해동용궁사를 간 적이 있다. 비가 그렇게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관광 온 사람들도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그곳에서 우리는 두 남녀를 보았다. 파란 눈을 가진 두 사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대화를 나눴지만 그들의 손짓을 통해 우리와 같은 '농인'이라는 점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쭈뼛쭈뼛 다가가고 싶은데 국제수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가가지 못해서 어물쩡거릴 때 한 언니가 용기 있게 다가갔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했다.


"당신은 농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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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을 떠났을 때, 호이안 올드타운 내에 위치해 있는 리칭아웃티하우스를 방문했었다. 이곳은 베트남에 있는 농인들로만 이뤄진 카페라는 점이 아주 특별하다. 낯선 땅에 사는 낯선 사람이지만 낯설지 않은 그들을 만날 생각에 베트남으로 여행 갈 때 꼭 가고 싶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나는 이곳을 2018년과 2023년 총 2회 방문했었는데, 2018년 첫 방문 당시의 나는 국제수어라는 것이 있는지 몰랐고 베트남 수어를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베트남 농인들을 만났을 때 함께 대화를 나눠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대화는 커녕 낯선 외국인을 대하듯이 버벅거렸으며 각 테이블마다 준비되어 있는 나무조각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했었다.


하지만 다시 방문한 2023년, 아주 기초적인 실력이지만 국제수어를 배웠겠다!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는 부푼 마음으로 향했다. 몰라보게 바뀐 다낭 공항과 달리 리칭아웃티하우스는 5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었고 그곳의 직원들은 낯설지만 같은 농인이라는 점에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남편과 대화하며 리칭아웃티하우스로 들어서는 우리를 지켜보던 그녀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농인입니까?"




"Where you from?"

한국이나 낯선 타국에서 한국 사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농인들은 국적과 관계없이 같은 수어를 쓰는 농인들을 만나게 되면 귀와 입에 손을 가져다 대며 이렇게 묻는다.


"Are you deaf?"


당신의 국적이 어디냐고 묻는 것은 당신이 우리와 다른 곳에 살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임을 전제하고 묻는다. 하지만 농인이냐고 묻는 질문 속에는 마치 한국사람을 다른 나라에서 만난 듯이 반가운 마음이 담겨 있다. 당신은 나와 다른 곳에 살지만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농문화를 알고 있는 나와 같은 농인이냐고 묻는 것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져버려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종종 버벅거리곤 했지만 이 짧고도 소중한 두 번의 만남을 통해서 나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언어는 잘하든 못하든 일단 부딪혀봐야 하는 것.

부산에서 농인을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언어를 아는 내가 아니라 언어를 알든 모르든 대화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먼저 다가선 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잘해야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무척 많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도. 하지만 잘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해보자고 도전한 한 사람 덕분에 나는 그들이 어떤 표현을 쓰고 단어를 표현할 때 어떤 수어를 쓰는지 책이 아니라 실전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지식은 책과 같이 문서화된 형식지가 있고 직접 몸으로 체득한 암묵지가 있는데 특히나 수어는 몸으로 먼저 부딪혔을 때 더 쉽게 다가오는 암묵지에 해당하는 지식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느꼈다.


두 번째. 농인은 농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두 번의 대화가 모두 "Are you deaf?"로 시작된 경험은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공유함으로써 서로가 가진 '낯섦'에 대한 첫 번째 벽이 금방 허물어진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언어를 쓰는 우리지만 우리가 손짓으로 소통을 하는 농인이라는 공통된 사실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물꼬가 되어주었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깨트린 첫 벽을 넘어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늘 물 흐르듯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대화 속에서 다양한 제스처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농인들이 제스처로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할 때, 청인들은 우리의 눈빛과 손짓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수어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지만 농인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경주를 말하고 싶어 하는 그들이 경주를 몰라서 그저 손바닥으로 구불구불한 능선을 표현했을 때 우리는 일동 "아-! 경주!"라고 대답했었다. 이 경험 역시 우리가 같은 농인이기 때문에 이토록 쉽게 눈빛과 제스처로 대화가 통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 번째. 언제 쓸지 몰라도 언어는 미리 배워둘 것.

코로나19로부터 일상생활을 회복하고 다시금 해외여행이 가능해진 지금, 우리는 언제든 해외로 떠날 수 있고 해외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외국인들도 종종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외국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만큼 국제수어를 접할 기회 역시 늘어났다. 하지만 나는 한국수어도 어려운데 국제수어로 언어를 배우다니 그저 대단한 걸!이라고 생각만 했었고 다른 친구들처럼 외국 농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여건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국제수어를 딴 세상 이야기로만 생각해 왔다.


올해 초에는 지난주 제주도에서 개최되었던 7월 WFD 행사를 앞두고 다양한 기관에서 국제수어수업 개강이 자주 있던 때였다. 국제수어개강 소식을 통해 문득 2025년에 일본에서 개최되는 데플림픽(Deaflympics, 청각장애인들이 참전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을 출전하는 남편 따라 국제수어통역사로 지원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고 자그마한 동기를 담아 국제수어를 배우게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배운 언어는 내게 수어통역 수업 때 강사님이 보여주신 국제수어 영상을 쉽게 이해할 수수 있게 도와주었고, 언어를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다른 나라 농인들과 '대화를 해볼까?' 하는 용기를 일으켜주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기회는 언제나 열린 문틈으로 재빠르게 스쳐 지나간다는 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언어를 알지 못했더라면 나는 두 눈으로 보고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대화할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그저 멀찍이 서서 바라보기만 했을 것이다.



"Are you deaf?"


이 짧은 물음은 언어에 대해서 그리고 농인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해 주었고, 내가 농인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Yes, I'm d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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