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인생 같은 리티디안 비치로 향하는 여정
괌은 뜨거운 햇살이 종일 내리쬐는 것이 일상이면서도 때때로 비가 쏟아지곤 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비 오는 날이 하루종일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잠깐 다녀가는 정도라서 언제나 비가 오는 순간들은 찰나다. 유난히 일찍 눈 떠진 그날의 아침에도 비가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는데, 다른 날과 다르게 촉촉하게 젖어있는 땅 위로 대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투명하고도 가느다란 빛깔을 바라보며 다양한 날씨를 느낄 수 있는 괌에게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전날 오후, 1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도착했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못하였던 리티디안 비치.
숙소로 되돌아오는 길에 크고 검은 털을 가진 동물을 만났다. 그저 들개인 줄로만 알았던 이 녀석이 아기 멧돼지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총총걸음으로 차량 쪽으로 다가오는 듯하더니 자신이 나온 숲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멧돼지를 바라보면서 리티디안 비치 근처가 야생동물 보호구역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해가 지는 시간이면 야생동물이 활동하는 시간이라서 16시까지만 운영을 하는 걸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해봤다.
기필코 오늘은 멧돼지 말고 리티디안 비치를 보자며 결의를 다졌던 우리는 매일 7시 30분부터 운영을 한다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부지런히 리티디안 비치로 내달렸다. 공항에서 숙소 근처까지 이어져있던 도로는 대체로 잘 닦여진 포장도로였지만 유달리 북쪽으로 향하는 그 도로는 울퉁불퉁한 것이 전형적인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괌에서의 주행속도가 낮은 이유는 도로가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위험하니까 천천히 달리라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도로들이 산호가루로 만들어져 있어서 비가 올 때면 더욱 미끄러우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하나같이 크고 울창하게 자라나 있는 나무들과 달리 오밀조밀 낮게 지어진 건물들은 드문드문 보이다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새에는 푸릇푸릇하게 펼쳐진 잔디들과 열대 우림을 상상하게 만드는 풍성한 수풀들로만 가득했던 길이 펼쳐졌다. 아래에는 초록색이 위에는 하늘색이 끝없이 펼쳐진 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우리는 물방울을 세차게 쏟아내는 구름 아래를 지나기도 했다. 색다른 날씨와 풍경이 펼쳐지던 북부로 향하는 이 드라이브는 도시에서의 드라이브와는 또 다른 편안함을 선사했다.
10마일이 최고 속도라는 리티디안 비치의 입구로 들어서면서 우리는 울끈불끈 한 근육을 가진 타잔이 어깨 위에 원숭이를 데리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정글 속으로 차를 타고 들어갔다. 옅은 초록색과 짙은 초록색이 한데 어우러져 세상의 모든 초록색이 섞여있는 듯한 이 정글은, 어디까지 자라나 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크고 긴 나무가 우리가 지나가는 길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촘촘히 들어선 나무와 풀 사이로 햇살이 간간이 들어오는 이곳은 선선한 바람과 특유의 풀내음이 나는 곳이었다.
끝이 어디고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기에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정글에 들어섰을 때, 미지의 길을 향해 내딛는다는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감이 슬금슬금 들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고 위험하지 않겠다는 안도감과 함께 차츰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겼다.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간 덕에 비로소 우리는 정글의 끝에 닿았다.
정글 한가운데로 들어온 우리는 울창한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따스한 햇빛과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꼈고,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검은 날개를 가진 나비 그리고 잘바닥잘바닥 밟히는 야트막한 진흙 위로 떨어진 꽃잎들과 코코넛 열매를 보았다. 수풀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푸른 바다를 향해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디디니 그곳에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넓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맑은 바다 그리고 푸른 숲이 우거진 자연 아래, 세상에 아무도 없고 당신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리티디안 비치로 가보면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감히 얼마나 깊을지 감잡을 수 없게 진한 파란색으로 칠해진 바다 위에는 아득히 멀리 서라도 보일 법한 그 흔한 배 한 척 없이 깨끗했다. 탁 트인 느낌을 선사하는 저 드넓은 바다는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울창한 숲이 만들어 낸 자연의 품 안에서 가만히 앉아서 바라본 리티디안 비치는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또한 끝이 어딘지 모른다는 이유로 정글의 한가운데로 들어올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렇게 멋진 풍경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아찔해지곤 했다.
어쩌면 리티디안 비치를 향하는 이 여정은 우리가 사는 인생과 꼭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고 지금 내딛는 길이 과연 옳은 것인지 조차도 알 수 없는, 그 어떠한 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가려는 그 길의 끝에는 어떤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저 두렵기만 하다. 마냥 걷다 보면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로 인해 뿌연 모래 먼지가 두 눈을 가릴 때도 있고, 잘 만들어 놓은 도로를 걷다가도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어찌할 바를 모를 수도 있다. 무엇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을 마주할 때면 내가 걸어왔던 길이 잘못되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렵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지만, 계속해서 나아갈 때 우리는 신이 꼭꼭 숨겨놓은 보물 같은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걷는 이 길의 끝이 틀린 길이었다면 다른 길을 찾거나 다시 되돌아서 다른 방향으로 가면 된다.
그러니 그저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보는 건 어떨까? 지금 걷는 이 길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저 멀리 던져버리자.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세상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는 이는 평생 보지 못할 세상이라는 사실,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한 발짝씩 발걸음을 뗄 때 비로소 멋진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만히 들려준 리티디안 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