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파스타 먹을 줄 안다.
"해물 파스타는 무슨 맛일까?"
해물 파전도 아니고 해물 파스타라니 나이 60이 넘은 경상도 남자의 입에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을 들은 엄마는 적잖이 당황했다. 넌지시 언질을 던져준 엄마 덕분에 알게 된 그 소식은 나에게도 참으로 생소하게 다가왔다. 엄마도 아니고 아빠가 그런 말을? 그리고 그것을 먹고 싶어 한다니?
파스타나 피자 그리고 리소토 같은 양식은 늘 데이트나 친구들을 만나서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찾아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양식 레스토랑에 가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느끼한 치즈가 가득한 그 음식들의 향연이 과연 그들의 입맛에 맞을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들과 함께 우연히 들리게 된 대학로 근처의 맛집이라고 소문난 레스토랑. 여태 갔었던 양식집들은 대부분 정말 잘하는 곳에 가야 면과 소스가 잘 어우러져 맛이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파스타인지 국물에 담긴 생면을 먹는 것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맛이 없는 경우가 많은지라 걱정반 설렘반의 마음으로 방문했다.
해물 파스타는 없었지만 바질 크림 새우 파스타는 존재했던 그곳에서 아빠는 생애 처음으로 바질을 맛보고 파스타를 맛봤다. 분명 느끼하다고 한 두 입 먹고 말겠지 생각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빠는 그날 그 파스타를 정말 맛있게 드셨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먹는 아빠를 바라보면서 '아빠도 파스타 먹을 줄 아네?'라고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차츰 입맛이 변한다더니 아빠의 입맛도 변한 것일까? 파스타를 먹고 싶어 하고, 맛있다고 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괌에서는 꼭 해물 파스타를 먹어야겠노라 다짐했다.
유난히 햇살이 뜨거운 괌의 태양이 저 광활한 에메랄드 빛 바다 너머로 넘어갈 때, 햇살이 고하는 안녕의 순간이 그토록 아름답다던 건 비치.
특히나 건 비치에 위치한 레스토랑인 더 비치바에서 맞이하는 그 순간은 정말 짜릿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터라 미리 한국에서 17시 30분으로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더비치바는 아래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
: https://bestguamtours.com/
투몬비치와는 다르게 건비치는 자갈로 덮여 있었고 돌 사이사이에 이끼가 끼여있었다. 같은 땅의 바다가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건 비치'. 저 멀리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커다란 노를 저어가며 패들보트를 타거나 커다란 산소통을 메고 바다로 들어가는 다이빙을 즐겼는데 아무래도 이곳은 수상 액티비티를 즐기기 딱 좋은 바다인 것 같다.
여행은 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저 지평선 뒤로 뉘엿뉘엿 넘어가야 할 해는 17시 30분이 되도록 여전히 하늘 한가운데 걸린 채 우리를 뜨겁게 구워삶았다. 하필이면 예약했다고 주어진 자리가 해변가 바로 옆이라 햇살의 뜨거움을 그대로 받아야 했는데 양산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뜨거움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강렬한 햇살에 빨갛게 구워지는 경험이 아닌 멋진 선셋을 느끼기 원한다면 4월 말을 기준으로 18시 30분이 좋은 것 같다. 꼭 일몰시간을 미리 알아보고 일몰 시간대에 예약하기를 추천한다.
코코넛 파인애플 주스로 더위를 살짝 달래고 있자니 나온 우리의 음식!
예약해야만 맛볼 수 있다던 '셔프 앤 터프(Surf and turf)'와 현장에서 주문한 '해물 아라비아타 파스타(Seafood arrabbiata pasta)'.
너무 더워서 음식은 기대조자 하지 않았는데 웬걸? 예상외로 음식들이 매우 맛있었다. 전체적으로 음식이 짜지 않았는데, 해물 아라비아타 파스타는 소스와 면이 적절히 잘 어우러졌으며 해물도 다양하게 많이 들어가 있었다. 특히나 오징어가 아주 쫄깃쫄깃했다. 파스타를 즐길 줄 알게 된 아빠는 맛있게 잘 먹으면서도 크림 파스타가 아닌 것을 살짝 아쉬워하셨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크림보다는 토마토가 들어간 소스를 더 선호하시는데 과연 아빠의 입맛이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셔프 앤 터프에는 랍스터와 스테이크가 함께 나왔는데, 스테이크는 미디엄으로 주문한 대로 적절히 잘 구워져서 굉장히 부드러웠다. 다만, 랍스터마저도 미디엄으로 구워져서 나와서 입 속에서 이리저리 말캉거리던 식감이 매우 어색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갑각류를 날 것으로도 잘 드시는 분이라면 이마저도 완벽하게 느낄 수 있겠다.
음식은 입맛에 꽤 맞아서 만족했던 더비치바. 게다가 이곳에서는 SKT 통신사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해물 아라비아타 파스타는 무려 30% 할인이 적용되니 꼭 챙기길 바란다.
서서히 해가 지평선 뒤로 넘어가려 할 때, 사람들이 하나 둘 해변가로 나와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들의 카메라가 향하는 너머를 바라보니 해가 구름 뒤로 쏙 숨어버린 덕분에 분홍빛을 내던 구름들이 아름다웠다. 정말 붉게 물든 구름을 상상하였으나 그렇지 않았기에 내심 아쉬웠지만 이만하면 멋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의 테이블 옆에는 '타오타오타씨(TAOTAOTASI)'라는 공연을 하는 곳이 있었는데 저녁이 되자 미리 예약을 해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앉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불빛이 밝혀지고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분위기를 느끼면서 한 번쯤은 식사를 하면서 차모로족들의 공연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숙소로 떠나며 뒤돌아 본 더비치바는 해가 완전히 넘어가버린 19시가 되어서야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하나 둘 모이는 사람들 사이로 화려하게 바뀌는 이곳을 바라보며 언젠가 다시 괌을 찾는다면 그때는 이곳에서 괌의 흥겨운 밤을 만끽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