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뜨거웠지만 바닷물은 예뻤던.
기다란 섬인 괌은 공항과 시내가 밀접해있는 투몬비치를 중심으로 남부와 북부로 나뉜다.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남부와 북부를 알차게 돌아보기 위해서 많은 장소들 중에서도 각각 대표적이고, 가보고 싶은 장소만 골라내었다. 바로 북부에 있는 리티디안 비치와 사랑의 절벽 그리고 남부에 있는 에메랄드 밸리!
모든 장소들이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라 낯선 장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공존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궁금했던 곳이 있는데, 같은 장소 같은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이 많았던 '에메랄드 밸리'가 그랬다. 많은 사진들 틈에서 맑으면서도 오묘한 색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는 에메랄드 밸리를 보면서 이곳을 실제로 보면 어떨지 그리고 물 색깔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인지하는 궁금증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다양한 모습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듯, 남부로 향하는 길은 북부와는 다르게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다만 거칠게 불어오는 해풍 때문인 건지 대부분의 건물들이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어서 밤에 보면 꽤나 스산하게 느껴질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도로 위의 신호등은 참 독특하게도 전선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저 무거운 신호등을 얇디얇은 전선으로 버티게 하다니 갑자기 태풍처럼 강한 바람이 불어와서 맥없이 픽하고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상상을 펼치게 했다.
북부가 마치 열대우림을 스치는 기분이 드는 드라이브였다면, 남부는 바로 옆으로 보이는 청명한 바다가 제주도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물론 바닷물 색깔은 그보다 더 맑고 푸르게 보였다는 점이 다르달까? 쌩쌩 달리는 차장 너머로 빠르게 지나치는 바다들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움과 힐링을 선사했다.
에메랄드 밸리가 가까워질수록 멀리서 보이던 공장들이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공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특이하게도 기다란 굴뚝에서 뿜어내는 색깔들은 진한 회색이 아니라 꽃가루를 물에 풀어놓은 듯한 노란색이었다. '아니, 공장이 이렇게 가까운데 물이 맑고 물고기가 산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오후 세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차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뜨거운 햇살은 맥반석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오징어의 심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강렬한 햇살 아래를 걸어 도착한 그곳에는 한국사람들에게 관광명소로 소문났는지 오직 한국사람들뿐이었다. 어딜 가든 한국사람만 있던 괌이었지만 유난히 좁은 그 길은 이곳이 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사진처럼 투명한 물 색깔을 지닌 에메랄드 밸리는 여태 괌에서 보아온 바닷물과는 또 다른 색깔을 띠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바다를 봤음에도 이런 색은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아이에게 물고기를 보여주겠다고 빵조각을 톡 던졌더니 순식간에 수많은 물고기들이 물가로 몰려들었는데 그 옆으로 유유히 헤엄쳐가는 물뱀처럼 보이는 파랗고 가느다란 생명체를 보고 있자니 그저 신기했다. 물고기가 이렇게 많이 살고 물이 이 정도로 맑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공장이 자연에 큰 해는 끼치지 않는가 보구나 하는 안심이 살짝 들었다.
다들 찍는 사진처럼 앉아서 찍으려니 어찌나 뜨거운지! 다들 이 뜨거움을 참고 앉아서 찍었구나 싶은 생각에 멋진 사진을 위한 그들의 희생이 사뭇 대단하게 느껴졌다.
투명한 물아래,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볼 수 있었지만 너무 좁은 길 탓에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물에 빠질 것만 같은 것이 아름다움과 아찔함을 함께 선물해 준 에메랄드 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