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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 May 11. 2023

모든 순간이 처음이었다

첫 수영복, 첫 수영장 그리고 첫 스노클링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영복을 입어보지 못했고 수영장도 가보지 못한 그녀는 58년 인생 처음으로 해외에서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발을 내디뎠다. 젠더리스의 패션이 흔해진 이 시대에 남성용 수영복을 입는다 한들 누가 그녀에게 손가락질하겠는가? 난생처음으로 남편과 커플로 맞춰 입은 수영복은 그녀와 그녀의 짝에게도 안성맞춤이었다.


튜브와 구명조끼가 기본이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암튜브'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저 팔에 끼우면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 참 신기하였는데 무엇보다도 무게가 나가서 떠오르지 못할까 우려했던 그녀 역시 물속에서 가볍게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한 우려를 했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수영복을 입고 암튜브에 의지하여 두둥실 떠다니는 그녀를 보면서 새삼 세상이 굉장히 편리하고도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녀의 첫 수영장, 두짓타니 수영장

한 번씩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야자수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수영장의 물은 온도는 어찌나 차가운지, 발바닥에 닿은 찰랑거림의 짜릿함이 심장을 지나 머리끝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뇌 속까지 얼얼한 차가움에 놀라 우리는 투몬비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곱지만 뜨겁게 달궈진 모래는 눈부셨고 발 담근 바닷물은 맑은 유리알처럼 투명했다. 아무리 멀리까지 나아가도 물은 허리까지 왔고 파도가 어디에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잔잔했던 투몬비치는 물에서 노는 것은 좋아하지만 수영을 못하는 우리 세 사람이 놀기에는 딱이었다. 이래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괌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괌의 바다는 물이 굉장히 맑고 물고기가 많아서 스노클링 하기에 굉장히 좋다는 말에 처음으로 구입한 스노클링 장비, 처음이라 어찌할지 몰라 아등바등거리며 겨우 착용했는데 그러는 동안 분명 뭉텅이로 뽑혔을 머리카락들을 생각했다. 긴 머리 정갈하게 묶은 채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한 사람들이 그 순간만큼은 조금 부러워졌다.


퐁당! 얼굴을 담근 바닷속은 물이 어찌나 맑은지 내가 보는 것이 물 속인지 그저 물 밖에서 보는 모래바닥인지 의아할 정도였다. 조금밖에 가지 않았음에도 물고기들이 나의 시선 아래서 활개 치는 것을 보면서 바닷속을 탐험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투몬비치

구명조끼에 몸을 내맡긴 채 물 위에 가만히 떠있으면 하얀색 물고기 떼가 눈앞을 지나가기도 했고, 조금 더 발장구 쳐서 나아가면 검은색 줄무늬가 세로로 길게 나 있는 물고기를 만나기도 했다. 어떤 물고기는 투명하고도 오로라 같은 빛깔의 비늘이 헤엄칠 때마다 반짝거리곤 했다. 구멍이 송송 나있는 커다란 바위 근처에서는 어항에서나 보곤 했던 아주 작은 물고기들을 마주했다. 이 모든 것들을 두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그들의 손을 잡고 바닷속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함께 물고기를 만나는 경험을 나눈 것은 그들의 인생에서 만큼이나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되리라.


투명한 바닷속에서 나와 함께 유유히 떠다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고, 두 눈 가득 그들의 부드러운 듯 힘찬 몸짓들을 담고 있자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휴대전화가 아니라 눈에만 담아 온 사실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던 바닷속 탐험은 자연과 생명의 생동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강렬히 내리쬐는 햇살과 한 번씩 훅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투몬비치는 누군가 평화로운 순간이 어떤 것이냐 묻는다면 바로 지금 이런 순간이노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선사했다.


먼 듯 멀지 않은 거리에서 생애 첫 순간들을 경험하는 그녀는 우리가 나온 뒤로도 한참을 유유자적하게 바다와 함께 일렁이는 순간을 즐겼다.


모든 순간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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