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를 쓰든 구어를 구사하든 당신은 당신이다.
22년의 어느 겨울날,
대학교에 공연차 방문했다가 공연 뒤풀이로 수어동아리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젊음이 부러웠고 작은 일에도 꺄르륵 웃는 모습들이 싱그러워 보였다
대부분 수어를 배우는 구화인이었는데,
역시 요즘 세상에 완전 농인인 젊은 친구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더니 그 말을 실감했다
모두 잘 듣고, 말을 잘하는 친구들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차
담당 교수님이 한 학생에게 말 잘하면서 왜 말을 하지 않는지 물어보았다.
그녀가 목소리 내기를 매우 부끄러워했기에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수어로) 말하기를, 이전에 다른 대학교에 있을 때
농인들과 지내면서 그들로부터 '왜 수어와 말을 같이 사용하냐'라는 말에 굉장히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녀를 보면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말과 수어를 같이 하는 것이 어때서?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으면 저럴까?
어쩌면 농인들 틈에서 말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경험했던 걸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가지고 살아간다.
똑같은 지구촌 사람이라 한들,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영어를 쓰고 누군가는 한국어를 쓴다
신체적 다양성으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존재한다.
말하는 방법과 걷는 방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상대를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들은 시력이 기준보다 낮기 때문에 안경을 통해서 낮은 시력을 보완한다.
그러나 세상 어느 누구도 안경을 착용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이상하게 보거나
자신과 틀린 사람이라고 그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이미 안경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흔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청기를 착용하거나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그래서 세상 어딜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보청기 판매 매장이고, 발에 차이는 것이 수어 학원이라면
누구나 귀가 조금만 안 들리면 '아 보청기 매장 한 번 가봐야겠는데?'라고,
상대와 조금 더 편하게 대화하기 위해서 '수어를 조금 더 배워야겠네'라고 생각하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보청기를 착용하든, 말을 못 하든, 수어를 쓰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 사람은 나보다 귀가 잘 안 들리나 보네."
이게 전부였을 테니까.
그저 우리는 잘 들리지 않아서 보청기를 착용하는 사람일 뿐이고
음성언어보다 시각언어가 조금 더 편리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만, 그 수가 적을 뿐이다.
신체적 다양성에 대해서, 저마다 가진 능력의 다양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서로의 다양성을 깨닫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사는 상대를 바라볼 때,
색안경이 아닌 투명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처럼 언어의 사용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당하는 경험을 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생기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은 적이 있는 나와 그녀를 포함한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미약하나마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수어를 사용할 줄 안다.
이 자체로도 그대는 충분하고 그 모습이 당신 그 자체다.
누군가 당신에게 왜 그렇게 사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당신의 삶의 방식이라고
그것이 왜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되묻는 용기를 가지길 바란다
잘 듣지 못해도 당신이고, 구어 대신 수어를 사용해도 당신이고, 수어를 잘하지 못해도 당신이다.
당신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든
누가 뭐라든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은 당신 하나뿐이며 당신은 이미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더 이상 본인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들을 만났을 때 주눅이 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 보다 당신이 더 나은 존재라고 오만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는 그 자체로, 당신은 당신 자체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그걸로 충분한 존재라고 생각하라는 뜻이다
꼭 남들과 같은 모습이어야 할 필요가 없이
당신은 당신으로 충분하다.
세상을 향해서 당당하게 외쳐보길 바란다.
"이게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