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고령화가 진행되어가고 있고 노동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모이던 어린이집이 어느새 요양원으로 변하는 저출생 시대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현재.
50대의 나이지만 두 사람이서 행복하게 여행도 다니고, 알콩달콩 즐기면서 잘 사는 부부들이 있다는 딩크족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브런치 글을 쓰느라 한동안 블로그에 도서 서평 글 올리는 것을 게을리했는데, 마지막으로 업로드하지 않은 채 저장만 해둔 포스팅 글의 도서 제목은 공교롭게도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이다. 이처럼, 딩크족으로 사는 사람들을 책과 소식으로 접하면서 새삼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뉴스에서 저출생이라고 떠들어대고 딩크족이 존재한다고 한들, 바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딩크를 선언하지 않았고 되려 주변 사람들은 잘만 결혼하고 아기들을 잘만 낳았다. 저출생?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아주 먼 나라에 사는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내딛지 않은 길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아이 없이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라며 딩크로서 당당하게 선언했건만 현재의 우리는 젊고 어리지만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도 같은 마음과 같은 상황일까? 사람 세 명이 아니라, 사람 두 명 고양이 세 마리가 과연 그때 가서도 행복할까?
현재에 만족하면서도 종종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할 때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찾아오곤 했다. 그렇다면 정말 딩크족으로 사는 삶은 어떨까?
딩크족인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는 어렵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답을 정해둔 채 외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이 상황에서 내가 궁금해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로 책이다. 그때부터 나는 딩크족에 대한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우리 둘만 행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들이 넘쳐나는 그 틈 속에서 딩크족에 대한 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 귀한 책 한 권씩 읽어 내려갈 때마다 딩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나의 생각과 감정이 같은 그들로부터 공감을 얻었고 그들 역시 녹록지 않은 주변의 시선을 겪었다는 사실에 잔잔히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길을 향한다는 것에는 정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실감했다.
딩크는 그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딩크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긴 선택이었다. 경제적인 상황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딩크족인 사람, 아이를 원했지만 신체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서 딩크족이 된 사람, 누군가를 돌보는 삶보다는 자신의 삶이 더 소중한 사람 등,, 딩크의 선택에는 그들만의 이유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저출생 시대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유로 딩크를 선택한 이들에게 이기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딩크족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미래의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고민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아이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미래의 아이의 행복과 현재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고 선택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딩크족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했으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것.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딩크족이 나오고 딩펫족이 나타나는 이런 상황에서, 아이 없는 삶을 사는 부부가 있다면 그들의 입장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는 그들이 내린 용기 있는 결정에 지지를 담아 보내는 것이 훨씬 낫다. 언젠가 그 부부들이 생각과 상황이 바뀌어서 아이를 낳기로 했다면 그 역시 그들의 선택일 뿐, 변덕을 부린다고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