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때, '오늘은 돈가스를 먹어야겠다!'라고 결정해놓고도 길을 걸어가다가 고소한 삼겹살 냄새가 코를 찌르면 '아니다 삼겹살이 더 맛있겠는걸?'이라고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인생의 큰 결정도 어느 순간 예외의 틈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그들 앞에서는 온갖 감정을 끌어올려 축하의 말을 전했지만 뒤돌아서면 아기 고양이 사진을 바라보는 것처럼 귀여워 미칠 것만 같은 감정은 없었다. 담백하고도 시니컬하게 '그래 임신했구나 고생길이 열리겠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역시 같았다. 갑자기 전해온 그녀의 임신 소식은 '임신이라니, 힘들겠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가끔 만나는 친구들과는 달리 그녀는 매주 만나다 보니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생명체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세상 모든 아기들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고 여자의 배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가 생애 최고의 아픔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임신과 출산의 과정. 어릴 적에도 성인이 된 이후로도 내가 경험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책 위에 적힌 글자 그대로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 사실일 뿐.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이 작은 생명체가 주별로 성장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도 아주 정밀하고도 빠르게!
처음에 아기집이라고 사진을 보여 주었을 때 '아기집이 뭐 어쨌다는 거지? 저 작고 동그란 점이 아기집이라고? 근데 그게 왜? 아,, 저 안에 아기가 있어?'라고 생각했다. 까만색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하얀색 동그라미는 그저 생소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어느 날에는 아기가 더 자랐다고 또 다른 사진을 보여 주었는데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젤리 곰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게 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헐 뭐야, 이게 아기라고?'
'뭐야 이렇게 콩알만 한 게 심장이 뛴다고? 이렇게나 빠르게?'
경험해 보지 못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실들을 그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은 이상하고도 신비한 도깨비 나라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뭐야 이거?'라고 시작하게 만드는 일들이 매주 일어났는데 그때마다 생명이 주는 신비함을 하나 둘 깨달아갔고 점차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달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