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필요한 이유
"청각장애인은 들을 수 없어서 불쌍하다 나는 들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수어를 가르칠 때 어느 수강생이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그리고 다양함 속에는 수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신체적 차이가 존재하고, 성별의 차이, 나이의 차이, 인종의 차이,,
하지만 많은 차이 속에서 종종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한다.
차이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차별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이다.
일직선으로 그어진 선 위에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 있다.
누군가의 손에는 빨간 주머니가 들려져있고 누군가의 손에는 노란 주머니가 쥐어져있지만,
서로의 시선이 똑같이 앞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차이라면,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선 위에 서로 다른 사람을 세워서 계층을 나누는 것,
그래서 누군가는 위를 바라보고 누구가는 아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차별이다.
청각장애인을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동정의 시선을 받아야하는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당신은 차이를 아는 것일까 차별을 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편하게 깨끗한 물을 마시며 일상을 영위하지만 지구 반대편 누군가는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하늘 위에서 포탄이 떨어지지 않길, 내 곁의 누군가가 오늘도 살아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의 순간이다.
이렇듯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다보면 나보다 여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진다.
하지만 남들보다 나은 여건과 상황에 대해서 자기만족에 그치며
'나는 그정도는 아니야 참 다행이지'의 태도를 지니기보다는,
현재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당신이 가진 것을 통해서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불쌍해..'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불편하겠다..'
상대의 상황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방법을 찾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나는 그정도는 아니야 '
선을 긋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지하고 그들을 나보다 낮은 사람으로 인지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귀가 안 들리다니,, 저런 인생은 정말 불쌍해'가 아니라
'귀가 들리지 않아서 불편하겠네 어떻게 하면 조금 덜 불편하게 할 수 있을까?'처럼
동정의 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의 시선으로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