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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Apr 29. 2016

머물고픈 고독이 쓸쓸히 밀려가네 마곡사

사람과 자연을 끌어안다





물길과 신록이 휘감아도는 행복한 마곡사




여행이란

여행을 떠난다는 건

그리움과 보고픔을 지금 살고 있는

나의 현실을 한 발 떨어져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다


봄비에 꽃이 피고 봄비에 꽃잎이 지듯

밥을 짓기도 하고 집을 태우기도 하는 불길처럼

물은 밤과 낮처럼 피할 수 없는 일상이기에

행운으로서의 물이기를 바라며 저마다 하루를 살아간다


산사를 휘감아 흐르는 물길은 얼핏 싱그럽고 해맑아 기쁨이기도 하지만 장마에 흙탕물로 흐르는 급류는 두려움일 뿐이다 하루라는 시간 위에 선 우리의 일상과 곁에 있는 사람들 더불어 살아가는 무수한 관계가 또한 그러하다 희열이기도 하고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런 흔들림에서 한 발 물러서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다가서게도 하고 멀어지게도 하는 발걸음을 이끄는 시간은


여행이다










길에서야 비로소

한발 물러섬을 한발 다가서야 함을 깨닫곤 한다


여행이란 과정은 활짝 핀 꽃잎처럼 노래하는 사이 저도 모르게 열매를 맺는 신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여행하는 내내 영혼은 차분해지고 좀 더 견고 해지며 흐트러지고 불안하며 무거워지는 현실의 짐을 내려놓고선 개운하게 맑은 물에 멱을 감음처럼 마음이 정화된다


차창 밖 풍경에 흐르는 음악 사이로 떠오르는 상념들 어떤 풍경 어떤 신비가 펼쳐질까 내내 설레며 달려간다 일과 집 이외에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사람들을 지니고 사는 건 얼마나 행복한가 한가한 틈이나 나들이로 홀가분해질 즈음이면 울컥 떠오르는 희열 비밀처럼 즐거운 시간들 여행길의 후련함 삶의 음미 발견의 즐거움이 수놓는 여행은 꿀맛이다


여행길에 들어서면 잊힌 존재의 고마움에 가슴이 부풀고 잠시 잊었던 얼굴들이 떠올라 애틋한 맘이 일어서며 어느 깊은 내면의 골방에 갇힌 채 시들던

영혼의 감성이 일어서선 살아있음을

생동감에 차오름을

낙엽처럼 퇴색하던 뿌연 내면을 연둣빛에 일어서는 풀잎처럼 싱그럽게 한다


혼자의 여행은 이따금 먹먹하고 알싸한 고독이 쌉싸름한 초콜릿 맛에 곁들인 달콤함처럼 밉지도 싫지도 않은 매혹적이라 불러야 할 묘한 매력이 스몄다 그래서 편안하고 한편으로 우습고 또 한편으로 고혹적이기도 하다


희미한 기억에

늘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모랄까

가끔은 하우습게 여겨질 때가 더러 있다









산사 하면 언제나 굽이치는 계곡을 지나 깊은 산골짜기에만 있을 거라 생각하며 으레 그리리라 생각하던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지리산을 뱅글뱅글 도는 여행길에 척하니 눈에 들어온 것은 논바닥 한가운데 아주 평평한 자리에 근사하고 깔끔하니 자리 잡은 절이었다 논바닥 평평한 가운데 절집이 있다는 놀라움과 그때의 신선한 충격이라니 마곡사와의 첫 대면이 그러했다 마곡사 근처에 이르니 내가 생각했던 산속의 풍경은 오간데 없이 어디나 있을법한 마을이 나타나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니 이건 마을 한복판이 아닌가 물이 맑고 경치 좋은 절이라 산속 깊은 곳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찾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마치 실상사를 처음 대면했을 때의 의아함과 비슷하였다


어리둥절한 기분 그대로 널따랗고 기다란 강물 줄기를 따라 마곡사로 휘적휘적 걸어 올라갔다 물길은 휘어 돌아가는 데 신비하고 화려한 연등이 길고 길게 이어져 절 안쪽으로 이어져 간다 걸음걸음 그리 멀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잠시 사색에 빠지기 딱 좋은 겨를을 걸어 모퉁이를 돌았을 뿐인데 사방은 순식간에 물소리 가득한 어느 깊은 산속 한가운데 있었다


여기저기 이쁘고 정결하며 청아한 길들이 이쪽저쪽으로 쭉쭉 뻗어있다 나를 만나려거든 물과 물소리에 속세의 때를 하나둘 씻어내며 다가오라는 듯 물바가지에 체하지 말라고 버들잎을 띄워놓듯이 물길을 따라 저만치 돌아서 느긋하고 쉬엄쉬엄 오라는 듯 예천의 회룡포처럼 단양읍의 자리 앉음새처럼 계류가 휘어감은 어귀에 마곡사가 의젓하게 앉아 손님을 마중하고 있었다 푸름과 맑은 물길에 귀를 씻고 눈을 씻고 마음을 닦아내니 비로소 걸음은 가볍고 신기하고 정겨우며 소박하고 거룩한 산사의 한가운데 이르게 된다











마곡사는 김구 어른이 피신해 머물렀고 김시습도 머물렀으며 대광보전의 현판은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이 썼다 강세황은 아버지가 예조판서였으나 큰형이 과거시험 중 부정을 저질러 벼슬길을 등지고 그림을 그리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혼자 학문을 닦으며 살다정조대에 실시한 노인 과거에 60세에 장원급제하여 말단으로부터 시작해 초고속 승진으로 고위 관직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학창 시절 물이 참 좋았다는 마곡사 그 물소리가 아직 귀에 선하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 순간부터 수십 년을 가고픈 곳으로 마음 깊이 담아두었던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바라보니 나의 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멋지고 근사하며 풍요로운 신록 청아한 물소리 정갈한 절집의 행복한 시간이 수려하게 이어져 느긋하고 한가롭기만 하다 이쁘고 손때 묻어 반질반질함처럼 친근한 절집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간

냇가 편안하고 만만한 바위에 기대앉아 기와랑 연등이랑 나뭇잎에 둘러싸인 채로 한가로이 지나는 이들의 소곤거림이랑 느긋한 발걸음에 눈길을 주며 물소리에 파묻혀 잠시 쉬다 보니 마음은 어수룩해져 이내 깜빡 조는 듯 깬다


암자를 둘러보아야 할 건데 첫눈에 든 아주 이쁜 길은 다음으로 남겨두고 수더분한 시골길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어본다 구석구석 나무 사이로 여기저기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이 듬성듬성 열린 것이 참 맘에 든다 개울을 따라 길이 났고 사람이 심은 나무 사이로도 길이 있으며 소나무 사이 철쭉 이쁘게 핀 길도 있고 시골 마을로 들어가는 언덕배기 길도 있으니 어디를 골라 걸을지 고민하고 망설이는 잠시간의 서성임이 어찌나 즐거운 놀이처럼 흥미로운지 모른다


푸른 나무 아래 뽀얀 잎새 향기에 귀여운 고민 같은 갈등을 쓰다듬듯 서성이다 백련암으로 올라가니 거기 물맛이 어찌나 달고 맛나던지 두어 바가지를 마시고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가서 한 바가지 가득 떠서

실컷 마시고는 근처 신록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앞산 자락을 정원으로 둔 푸른 정자에 앉아 액자처럼 바라다보이는 이쁜 녹음을 바라다보며 잠시 잠깐 졸음 반 멍함 반의 느긋함으로 그 순간의 희열과 한가함이랑 행복을 노래하는 새처럼 가슴으로 지저겨본다 그리움을 보고픔을 그런 그릇에 담긴 고운 인연들을

두런두런 길을 거닌다 조금 있으면 송홧가루 훨훨 날릴 이 길을 거닐으며 한가로움이라는 담백한 맛 깡충 뛰어오르고픈 희열이라는 여행의 경이로움이 바로 이런 풀잎 한가닥의 흔들림이라는 둥 별의별 생각을 하며


혼자 산새처럼 웃는다










오늘은 계룡산의 절집 갑사와 신원사도 곁들이로 돌아보려 했는데 여기서 오래오래 재미나게 머물러있다 급할 것도 없고 이보다 나을 곳도 없으니 다른 마음이 일어서질 않는다 아주 느긋하고 풍요로운 행복의 소멸 같은 꿈이 연둣빛 뽀얀 속살처럼 보드랍고 순결한 잎새에서 파르르 날아오른다 꽃잎이랑 나뭇잎이 그리운 연인을 가만히 부르듯 보고픔이 되어가는 나의 그리움들이 치마저고리 곱게 차려입고 분홍 입술 뽀얀 볼에 방긋 미소를 지으며 귀밑머리 바람에 날리며 방긋방긋 꽃잎처럼 웃는다


그 미소에 어색하여 잠시 머뭇거리며 가만 바라보던 나도 물감이 번지듯 샤르르 길가의 양지꽃처럼 환한 웃음꽃을 피운다 여행길은 이렇게 웃음이 가만 피어오르는 염화미소의 행복을 빨랫줄처럼 가만 드리워 파랑 하늘에 곱게 때를 덜어낸 하양 빨래처럼 인연의 줄에 붙어 한껏 날아오른 웃음을 푸른 창공에 꿈결처럼 피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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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휘파람


글 사진

휘파람

201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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