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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May 02. 2016

사람 사이에서 더 마스터

알듯 말 듯 인생의 신비











봄꽃 보내며 노래 한 곡 같이 듣자. 봄이 떠나는 날.  4월을 보내며 문득 영화 한 편 떠오르더라.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간 듯 울컥 가슴이 먹먹해지는 거야.


결자해지라던가! 꽃을 피우고 초록 융단으로 대지를 뒤덮어 설레고, 그리움에 빠지게 하던 봄비가 꽃들을 데리고 떠나려는지 바람이 몸부림치더구나. 이런 날엔 문득 아련하게 떠오르는 영화가 몇 편 있단다. 열정에 숨은 숨 가쁜 그리움 가득 미소 짓는 이쁜 초상화 아래 행복한 환상이 드리운 '베스트 오퍼'도 떠오르고, 신비로운 시간과 혼란 정체성의 분열 같은 고독을 오묘하게 조합이라도 한 듯, 교묘하고 섬세한 영화 '디 아워스'도 생각난다. 아스라한 사랑과 이별 운명 같은 실마리를 드리운 아름다운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울컥하다간, 먼발치에 선 것처럼 아련한 어여쁘고 아리따운 그녀의 발랄한 고독에 왠지 덩달아 빨려들던, '투스카니의 태양도' 생각나고, 오늘은 사람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다 그네들 품으로 스러지는 떨림 같은 인간의 오만과 운명을 다룬 영화, 마치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더 마스터'에 나오는 음악이 듣고 싶어 졌어. 





 



이 영화는 헝거게임으로 많이 알려진 '여인의 향기'에서 학생 역으로 맨 처음 만났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열연했어. 2012년 작품인데, 마치 그의 유작이나 마찬가지지, 잔잔한 일상과 현실을 그림처럼 펼쳐 보인 영화 '이너프 세드'의 주인공역을 맡은 제임스 갠돌피니도 50대인데 먼저 갔지. 젊은 나이에 떠나는 좋은 배우들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무겁고 먹먹해지더라. 곁에 사람들과 좀 더 좋은 사이로 지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 나이 그만큼에 다다른 까닭 이리라. 


현대 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The Master'라는 영화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영화 '아이다호'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청춘의 아이콘 리버 피닉스의 친형인 호아킨 피닉스가 열연했어. 에밀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처럼 프레디와 렝케스터의 관계 또한 눈물겨운 영화이고, 이런 유의 영화는 결론을 캐묻고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찬란한 영상과 묵직하고 열정적인 연기를 고스란히 음미하며 흘러가는 냇물처럼 영화를 따라 흘러가며 흐느끼듯 몰입하는 영화일 거야. 영화의 흐름을 타고 종이배처럼 나아가는 거지. 이따금 청소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미심쩍고 불안하던 것이 구체화되고 뚜렷해질 때가 있다. 더러는 가슴 뛰는 즐거운 것들 이건만 어떤 것은 가슴 졸이게 하는 아픔도 있다. 그래서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있는가 보다. 모든 것이 떠나고 모든 것이 다가선다. 아픔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한 것이 한쪽에만 치우친 것은 아니다. 하나의 존재에 기쁨과 슬픔이 서렸고 하나의 사람에 행복과 아픔이 스몄다. 떠나기에 인생이며 다가서기에 일생이다. 무너지고 일어서는 것들 아픔이자 웃음인 것들, 그런 것들이 시간의 의미인 것을 있는 듯 없는 듯 웃기만 하던 그녀가 홍시처럼 말간 웃음을 짓는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뽀얀 그리움처럼 홍시를 지나면 햇살이 보이고 빛의 신비가 스민 듯 투명한 감빛이 가슴에 박히고 나면 평생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워 떠올려보곤 활짝 웃음 짓게 하는 홍시의 빛깔과 맛. 감잎이 고풍스러운 병풍 빛으로 땅을 그을 때 고독은 빈 하늘처럼 헐 거 벗은 채 끄트머리에 홍시만 대롱대롱 매달렸다. 유혹받듯 흔들리는 앙상한 모습에 앉은 허연 눈꽃을 밀어내려 튕기는 겨울의 나무는 인간 사람의 처연함과 애틋함에 스민 고독의 몸부림처럼 아득하다. 호프만의 격이 없이 순박한 미소가 갸름한 성자의 것이라면, 에이미 아담스의 천진난만 투명한 미소는 요정의 그것일 것이고, 피닉스의 미소는 어린아이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순수의 절정이겠지 순결하고 고결하며 티끌 하나 없는 해맑은 눈동자. 황금빛 머릿결을 타고 내리는 미간을 지나 푸른 호수 같은 눈동자에서 한없이 푸근하고 고요하며 안락함에 빠져들게 하는 미소는, 무거운 짐과 스트레스와 허영을 내려놓은 집안 거실에 앉은 편안함 같은 것이다. '과거의 어떤 것도 부정하지 말자'는 에이미의 말처럼 인생의 매 순간은 시간을 걸어 여기까지 다가와 느긋하게 마주 보고 있는 거울 인지도 모르겠다.


운명 혹은 인생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부터의 끝없는 탈출 인지도 몰라. 그러하기에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게 되며 그마저도 결국은 지극히 이기적인 출발이자 종착점 인지도 모르지. 한줄기 보고픔 그리움으로 남는 꽃 같은 인생, 하지만 그 끝 지점에서 맞이하는 서러움에 운명은 찢어질듯한 고독과 절망 같은 서러움을 맞겠지. 그렇지만, 이런 응시를 통해 존재는 또 하나의 빛을 맞이하게 되는 거야. 인생이란 뜸이 덜 든 밥, 한창 피어나는 꽃봉오리, 미완의 여로, 불완전한 꿈일 테니..,


의미란 것들, 깨달음이란 것들은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도 다가온단다. 더불어 틈틈이 영화를 보며 함께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이 또한 근사하지 않을까? 








아름드리나무 아래 짙은 그늘을 고독이 걷는다.

외로움 부질없음 희한한 서글픔으로 

욕망을 따라 비칠 비칠 거닐어 흉내내기를 해본다.


그즈음이면 그냥 웃는다.

지난 삶을 드리운 주름을 타고

이런 때는 그냥 웃는다.


그리움은 채울 수도 채워질 수도 채워서도 아니 됨을

어렴풋 알듯 말듯하니까.



고독은 빛으로 와서 이따금 귀띔해주는 듯 어둠으로 빠져나간다. 오늘 밤엔 비가 내릴까? 비가 내린다면 그 비는 더 이상 봄비는 아니겠지? 그렇더라도,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아름다운 고혹적인 인생에 더불어 달콤했고 절망을 가져다준 사람들 사이와, 우리 둘만의 사랑이 있었기에 전율하도록 아름다웠고 향기로웠던 거야. 그거 하나만으로 생은 갸륵하고 매혹적이지. 봄을 보내며 문득 영화 마스터에서 치열한 인간의 삶 한가운데를 달려가던 노래 'No other Love'가 가슴을 찌르르 긁는 듯 무겁게 흘러내린다. 올봄 4월 많이 그리워하고 보고픈 일들로 행복했길 바라면서 행복한 5월 한 아름 품기를.. 













The Master에 흐르던 노래 

No Other Love - Jo Stafford










휘파람

201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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