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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Jun 01. 2016

내 안의 명작 영화 그랜마

고독과 관계와 일상의 빛과 그림자


또 하나의 일생을 살게 해 준 내 안의 명작 그랜마



햇살?

혹은 빗물? 


잡아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때에 이르렀음을 알듯

그냥 그렇게 

햇살은 지나가고야 만다


여전히 있는 것이기에 담아놓아도 소용없는 것인가

내일이면 다가올 것이기에 잡을 수 없는 걸까


이별

빗물

물결

그리고 그리움과 보고픔이 담긴 빗소리가 

낯선 냥 스산함으로 모든 걸 가져가 버린다


그랜마라는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과 함께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나도 그렇지만 온 세상이 이별하는 마당엔

나의 이별이 뭐 그리 대수이며

눈에 띄기라도 할까마는

새싹은 연둣빛으로 일어서고

급한 꽃들은 잎새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춘삼월에

하필이면 이런 호시절에 다가온 눈물 같은 이별이라니


여느 계절인들

이별이 세월을 가릴까 보냐마는

빌어먹을 이별이 하필이면 흐드러진 꽃 삼월이니 심사가 사나워지고

감정이 복받치는 건 조무래기 피조물의 하찮은 자존심 상하는

절규에 질러대는 비명처럼 혼잡하기만 하다


강물이건 호숫물이건 바닷물이건 한 바가지 걷어낸들 무슨 상관이랴

순식간에 휩쓸어가듯 채우고 마는 걸

그런데 사람의 심장을 건드린 이별이 다가서

하나 빠져나간 자리는 어쩌면 그토록 메워지질 않더란 말인가


한 열닷날은 지나야 겨우 숨 쉴만해지는 아프기 짝이 없는 사랑의 이파리


상처 없는 나무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가지 하나쯤 부러진 자국이 있어 옹이가 빠진 구멍이 되고

철마다 잎새와 헤어져야 하며 

삭다구니 하나쯤 헐겁게 붙어있고 드센 바람에 부러지지 않은 자국 

또한 어디 없으랴


고통이 있기에 아픔이 있기에 고독하기에 빛나는 보석인가

사람이란 존재는 작은 가슴 하나에 스미는 아련한 눈물빛 보물인가 보다


장삿집에 손님조차 고르게 찾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몰려 주인을 진땀 나게 하는 것이니

인생이라는 세상이 원래 그런 걸까? 설상가상에 엎친데 덮치고야 마는


이별한 아픔에 정신을 가다듬어보자며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웃픈 시름을 달래는 통에 잠시 마음이 가라앉는가 싶은데 

느닷없잎 손녀가 찾아와 기절초풍할 소식으로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오늘은 일진이 바나나 껍질 밟아 넘어진데 겆어 차이는 날인가 보다


고물 자동차가 부르릉 나가신다 어른 노릇은 해야겠길래

연륜이 있고 경험이 있으니 뭔가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아야지

아웅다웅 싫던 좋던 어울려 떠돌아다닐 단짝이 있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내 삶에

흐느끼듯 가슴 깊이 느끼는 평온

그런 삶의 동화 같은 환상은 아마도 그리움을 후광처럼 드리우곤

보고픔을 호흡처럼 거느리고 사는 이일 것이다


삶은 지나가는 거다 두려움마저 그토록 불안에 떨게 하던 무서움조차

가까이 다가서면 누그러뜨려지고 한가한 듯 무료해지고

바람 가득 품어 팽팽한 방패연 줄처럼 긴장에 휩싸이던 근심조차

아무렇지 않은 한낮의 햇살처럼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일기예보는 비가 온다지만 화창하게 하루가 저물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 그 백지장이 얼마나 창백하고 깃털처럼 보잘것 없이 

무감각하기만 하던지


고뇌와 고통으로 감당하기 힘들고 벅찬 일에 지치고 주저앉을 때

콩 놔라 팥 놔라 말은 많아도 햇살로 향하는 풀잎처럼 

나에게로 향하는 따스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안다면

근심은 자라지 못하며 힘들음에도 느긋해지고 잠시 잠깐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향긋한 커피 한 잔에 근심을 녹이듯 

정자나무 아래 휴식은 느긋하고 감미롭다


이제 뭔가 좀 알 것 갔다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왜 그토록 영화를 기댔는지 

이제 답이 나왔다


나는 여전히 아이였고 여전히 불안한 존재였으며 늘 부족한데 그것이 뭔가를 

몰랐다 지금 이 영화 속에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가슴을 탕 치고선 뭉클 울컥 심장을 두드리는 철렁하는 아픔


작아지고 보잘것 없으며 가냘프고 앙상한 나의 모습이 바라다 보인다


대화를 하며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어린 손녀의 터무니없는 말에서조차

즉흥적으로 흥분하는 가벼움 대신 그윽하고 느긋한 평온과 대화와 관용이 있다


쉬이 흔들리고 뒤틀리며 서럽게 솟구치는 찌름이 아닌

무디고 뭉툭하며 둔탁하고 무던하지만

안쪽에 드리운 깊은 사랑 애틋한 연민 감싸안는 따스함이

스며있다


좌충우돌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처럼 거침이 없고 거칠 것도 없으며

눈에 보이는 대로 들이받지만 마음엔 하얗게 드리운 뽀얀

웃음이 장난기 서린 볼따구니에 서렸다


하양 위에 분홍으로 올라탄 시간의 그림자가 얼핏 웃는 듯

울고 선 듯 아른하다 시간이 그렇고 운명이 그러하며 

오늘이라는 현실이 또한 그렇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기대고 의지하는 자기를 사랑하는 이의 품 안에 

한없이 머물고픈 그런 아이들 그러하기에 아이들이었던

어느 세월 자신의 모습을 새카맣게 잊고 사는 존재의 아릿한 시간의 혼란들


떨어져 살고 이따금 잊고 살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고 

언제든 만나게 됨을 알고 있다 그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운명이다


시간을 거슬러

그 순간의 하얀 그리움이 분홍으로 피어나 고운 빛으로

하얀 치아 사이에 웃음을 내비치듯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풀 수 있는 

고귀함을 알아채기라도 한 냥 도움을 청하려 내민 손을 꼬옥 쥐고선

그의 삶을 흘러 여기까지 스치고 지나온 인연을 찾아가는 마음에

드리운 눈부신 시간의 유영엔 눈물이 난다

존재는 흘러왔고 이어져 온 삶의 궤적은 이따금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시간이 흘렀어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과거로부터 잊혔고 잃어버렸으며 영원히 사라졌을 법한 어느 까마득한 

시간의 어쭙잖은 고통이 황량한 골목에 버려진 아스라함처럼

오롯이 버려지고 마는 때도 있다


그런 서운함 

그런 아쉬움

정녕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야속하고 비루하며

처량한 한바탕 시간의 어느 한쪽에 내린 소나기가 모두 마르고

흘러가 버리고 흔적조차 없을 줄 알았는데 하늘 끝까지 자라난 나무 

늠름하고 그늘을 만들어주고 시원한 모양에 기분 좋던 나무에 

그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얽힌 시간의 실타래가 아무리 꼬이고 헝클어져

도무지 끝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풀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젠가는 풀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마리를 찾고 찾다가 풀고 풀다가 꼬이고 꼬인 실타래를 만지작거리다가

홧김에 집어던지거나 끊어버리고 마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꼭 절망도 아니며 포기도 아닌 그냥 우리의 일상이며 살아가는 과정에 

일어나는 다반사일 뿐이다


저마다의 생각과 느낌과 결정과 행동이 얼마나 다르고도 다른지 알 수 없다

더더구나 그런 상황마다에 걸린 사람의 잣대 합리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궁리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이다

그러니

가슴에 절벽이 많아 수도 없이 벼랑에서 떨어지는 미궁

절벽이 수두룩한 건지도 모르지


고집불통 고결한 생각 돌고 도는 인생의 고리들이 수풀처럼 덩굴처럼 얽혔다




여자의 일생 여인의 운명 그리고 아이를 임신하는 사랑에 대한 불안

두려움 그리고 남겨진 인생과 가정과 존재에 아스라한 연기처럼 피어올라

어디론가 사라지는 상념들이 푸른 초원에 흔적도 없이 이어진다


사랑 임신 아이 그리고 가정과 인생 동성의 사랑과 사랑 이후에

남겨진 어린 소녀가 감당키 어려운 육아 책임져야 할 일 인생 그리고 

결정해야 할 것들 낙태 


지금 나는 어디에 있으며 나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임신과 낙태는 스물이 되지 않는 소녀에게 남겨진 너무나 풀기 어렵게

엉켜버린 실타래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일이 벌어진 이후에 감당키 어려운 차가운 시선과 비난

두려움과 걷잡을 수 없는 혼란 무책임한 남자 해결해야 할

의료 비용 무엇보다 이런 정체성의 혼돈과 가치관의

허물어진 틈바구니에서 외면하는 남자의 무관심에 상처받은 영혼이

두려움과 불안 없이 기대고 대화할 그 누구조차 없다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낯설기만 하고 무섭고 손가락질할 것 같은 모습에

도망치고만 싶다


그런 손녀의 잘잘못과 나무람과 비난과 꾸지람 대신 그 아이의 결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곤 

해줄 수 있는 것 도와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수모와 자존심 견디기 힘든

수치조차 마다치 않고 그 아이를 돕기 위해 할머니는 그 어떤 모험과 수모도

마다하지 않는다


노년에 얼마간의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환장할 만큼 답답한 노릇인지 


시험 문제처럼 답이 정해져 있거나 술술 풀 수 있는 문제로만 이루어진 

것이 인생이라는 길은 아니다

그렇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 무수한 갈림길에서 존재는 쉼 없이

골라야 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한 바가지 퍼낸 바닷물처럼

결정을 한 그 어떤 흔적도 없이 물결은 여전히 찰랑이며 존재를 응시한다


"좀 차근차근 말하려무나

너는 왜 그렇게 사람을 다그치니"


"불안하잖아요

대낮에 이렇게 둘이 나타나니까요

혹시, 너 임신했니?

제발, 임신했다는 말은 하지 말렴"


의외로 이 영화는 중 후반에 상큼 반란 같은 유머와 위트가 눈물겹게 

샘솟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하는 웃픈 아이러니와

블랙코미디 같은 방죽에 빠져들게 한다


돌고 돌아

부자 엄마를 둔 딸이 두려움에 혼란스러워 가난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할머니를 찾아오고 그 할머니는 그래도 사방을 수소문하고

굴욕과 고통만은 참을 수 있어 어찌 되었든 부자 딸한테는 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결국 어디서도 만족스러운 금액을 구하지 못하고 딸을 찾아가고야 마는 것이다


운명은 그렇게 되어먹고 시간은 그리로 몰아가고야 만다


옴니버스 영화는 아니면서 단락을 지어 연극의 막처럼 자막을 넣어

구별하는 바람에 문득 스모크란 영화가 떠올랐다


어느 얼음산 만년설에 그를 낳은 사람의 모습이 이제 자신보다 어린 모습으로 

얼어있는 모습을 보며 아스라한 이편에 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장면이


단절? 끊어진 듯 이어져있다




초가지붕을 얹는 날은 며칠 전부터 새끼를 꼬고 용마루에 쓸 용마름을 엮고

이엉을 많이도 엮어놓아야 하는 것이라

그렇게 기름기 졸졸 흐르고 윤기 나는 것들 초가지붕 하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삯은 지붕을 들어내노라면 거기에선 요즘 단백질 풍부하다던 

검지 손가락만 한 새하얀 애벌레들이 많이도 나왔던 것이다

요즘이야 약으로 쓴다지만 그 당시에는 닭의 좋은 먹이가 되었다


그리고선 이엉을 올리고 새끼로 두르고 용마루를 근엄하게 장식하면 

반듯하니 어여쁜 초가지붕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비바람 햇살의 풍파를 맞고 나면 그토록 탱탱하고 

자르르 윤기 흐르던 지붕은 잿빛으로 변해 여기저기 끊어지고

내려앉고 마는 것이다


가난해도 배고파도 텃밭에만 가면 먹을 것이 지천이었던 시골과 달리

도시에선 돈이 없으면 기꺼이 굶주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 

먹고사는 밥벌이에 바쁜 부모로 인해 아이들은 남의 손을 타고

풀이나 새, 바람이나 냇물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하고 메마르며 창백하고 

차가운 모니터 스마트폰 아스팔트와 시멘트 전선이라는 황무지에 갇혀 바깥 소음과

안쪽 소음 요란한 기계에 파묻혀 따스하고 정겨운 인간의 정서를

까마득히 잊고 사는 것이다

논밭에서도 시장에서도 함께 있었던 정겨운 어미와 자식 간의 공존의 거리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재배되고 사육되며 길러지는 우리 안의 가축처럼 닭장의 새처럼 

공장의 해맑게 웃는 빵처럼..,


"자존심이 너무 세서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은 줄 알았어요"

"너한테 정말 실망했다. 이젠 좀 나아진 줄 알았어"

"사람은 실수를 하는 거야" "아니요, 그건 단지 선택일 뿐이에요"

"왜 말하지 않았니?" "무서웠어요!" "뭐가 무섭니?" "그냥 무서워요"


우리 일상이 우리 삶이란 것이 우리들의 기대란 것이 대개 이러하다


아빠의 명령, '조용히 해!'

아들의 반항, '아빠나 조용히 하라고요!'

옥신각신 결론은~

엄마, '둘 다 조용히 해!'


긴장 웃음 그리고 구석구석 재미난 요소들

뭉클하다가도 우습고 그러면서도 진지해지고 웃픈 상황들

영화의 스토리와 진행이랑 구성이 그야말로 탄탄하다


자식은 부모를 무서워한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이 아프고 힘들어하며 실패하고 좌절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흔들리고 홀로 고통스러워할 때

도와달라고 말만 하면, 그간의 무서움과 두려움과는 달리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며 도와주고 해결해주기 위해 뛰고 또 힘써준다


"그냥 울고 싶어요.. "

"그래, 그럼 실컷 울려무나, 이런 일로 안 울면 언제 울겠니"

"난 완벽하지 않아요 엄마도 그래요 모두가 완벽하지 않아요"


사고는 자기가 쳐놓고 난장판 된 상황이랑 뒤치다꺼리는 엄마가 다 해줬는데

언성 좀 높인 거 가지고 너무 심했다며 따지고 대든다 아주 당당하고 거만하게


"쟤 말이 맞아요, 나는 정말 화를 잘 내죠, 너무 잘 내요!

누굴 닮아서 그런지 모르죠"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

해는 저물고 땅거미 내려앉고 문제를 해결한 손녀는 딸과 함께 

집으로 가고 나만 혼자 우두커니 벽에 선 채 남았다


가냘픈 전깃줄에도 노을이 앉을 수 있을까?




차를 견인했다 너무 오래돼 낡고 고장 난 마치 외롭고 지치고 

온몸이 아픈 밤의 외로움을 모두 뒤집어쓴 외로운 노인처럼


"누가 와요?" "네?" "누가 데리러 오나요?"

허공에 공명처럼 울린다


난 지금 어디 있으며 누구와 있는가 

티끌이 바람에 날린다

지금 나를 데리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둠에 잠겨버린 걸까?


혼자선 외롭지 않다

혼자일 때의 그것은 다만 감미로운 초콜릿 같은 것일 뿐

누군들 원래가 혼자이지 않은 존재 누구인가


다만, 많은 사람 가운데서야 비로소 

외로움이 아프도록 사무친다

그것이 진정 고통이며 아픔인 것이다


힘이 든다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삯아버린 초가지붕처럼 낡아빠진 사람이 떠나갔고

어여쁜 손녀가 다가와 아픔이었지만 이별이 남긴 허탈을

까맣게 잊게 만든 요술 같은 날이다


문학은 가난하고 글은 처량하며 책은 보잘것 없다

겉으로는 적어도 그렇다 

삶이 개입하는 상황에 선 문학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하지만 입에 거미줄 치고서야 어찌할까


사람의 일들 중에서

마음에 따르기 힘겹고 그러하기에

이래야 하는 줄 알고 그러고 싶지만 저래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나면

차라리 후련해지는 허탈에 온몸에 기운이 쏙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막막하고 가슴 어느 곳을 사정없이 찌르지만

그것이 우리 삶 우리의 시간이라는 길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인 것이다


홀로 아이를 낳고 태아를 지우고 삶의 보금자리를 떠나며

삶을 살아 여기까지 터덜터덜 나아왔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내일은 어둔 골목 메마른 가로등처럼

이어지고 나아간다

시간이라는 의미가 내려앉는 시각은 아스라이 별도 없는

어둠에 반짝반짝 가슴을 사슴처럼 도도하게 일으켜 세운다


기억에 남는 소설을 하나 고르라면 '안나 까테리나'를 고를 것이며

정말 재미나게 사는 사람 하나 고르라면 '안나 카테리나의 쾌활하고 낙천적인 

스테판 아르카지치를' 말할 것이다


내 생애 최고의 인문 서적을 고르라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랑 '한국의 미' 특강을 고를 것이고

가장 감동적인 영화를 고르라면 '그랜마'를 고를 것이다

두 권의 책에선 대한민국 삼천리 방방곡곡의 애환과 비애

사랑과 자부심 그리고 나의 겨레와 조국에 대한 

애틋한 정감이 스민 까닭이요 

그 안에 내 것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평상심의 애정이 약간은 뜨겁게 스민 인문과 문학과 예술과

우리 문화에 대한 깨달음이 감동을 주는 까닭이고


위 영화에서는 애초부터 고독한 존재의 아련함이 내내 흐르고 있으며

남과 다름으로 인해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며 답답하고 막연한 존재의

애틋함이 잔잔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으며 그런 일상에 드리운

예기치 못한 곁의 존재로 인해 뭔가를 해내는 자신의 모습과 애씀이

남일 같지 않아 측은하고 불쌍한 마음이 일게 하며,

더불어 사는 핏줄 그리고 곁에 사는 이들이 눈에 가시처럼 그리

만만치 않아 마음 아파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사는 

의연함이 가슴을 두드리고 그런 하루가 우리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가슴 깊이 공감하게 하는 평범함이 스민 까닭이다


화려하고 장엄하며 그럴듯한 설득이 아닌 내 삶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일상이 그림처럼 문학처럼 비처럼 아스라하니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의 노을 같은 때문이다




명작이란 무얼까?

어떤 걸 명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본 영화 중 나의 명작은 무얼까


나의 명작이란 나의 가슴이 감동에 사무치는 것일 게고

누군가에게 추천코자 한다면 스토리가 탄탄해야 할 거고 

양념 같은 유머랑 위트가 있으면 좋고

영화가 끝나고서 깊은 한숨처럼 생각할 꺼리를 제공하여 

잔잔한 여운이 향기로운 영화

그러면서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인다면 그야말로 명작 아닐까


물론 화면이 아름답고 배경음악도 감각적이며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과 몰입도가 적당하고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하는 영화라면

이야말로 내가 찾던 바로 그 명작이라 할 것이다


그런 명작 중에 하나로 

이 영화 그랜마를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취향의 차이가 크겠지만 나에겐 그렇다


독신 엄마와 딸과 독신 딸의 딸 할머니와 손녀 사이의 삶과 일상 그리고 

그들에게 몰아닥친 위기와 더불어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처럼 하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감동적인 영화라 말하고 싶다 덕분에 또 하나의 삶을 살았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하나의 삶을 더한 듯 뿌듯하고 향기로우며 찬란하여

치미는 감동을 추스르지 못할만한 벅찬 감동에

한참을 더러는 몇 달을 흥겹게 사는 것이다


이런 희열에 들뜨게 하는 명작 영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이며 찬란한 환희란 말인가





휘파람

2016

05




그랜마 (Grandma, 2015)

감독 폴 웨이츠 : 출연 릴리 톰린, 줄리아 가너, 마샤 게이 하든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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