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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Jun 04. 2016

시간의 빨랫줄

빨래처럼 흩날리는 6월의 애상


어디선가 실려오는 매콤 향긋 된장 내음에 고향의 기억이 꼬물꼬물 밀려옵니다


맑은 바람이 빨래 사이를 서성이다 가슴 깊은 곳을 휘저으며

아련한 기억을 끌어올리는 편안하고 느긋하며 

뱃속마저 풍만하니 한가로운 휴일의 유월 저녁입니다


이 즈음이면 고향에선 멍석 깔고 호박잎을 쪄서 강된장에 저녁을 먹을 무렵일 거예요


산에는 멍석딸기랑 산딸기 빨강 그리움이 못을 이룬 듯 투명하게 익어갈 것이고

옥수수는 수염을 흩날리며 토실하게 익어가겠지요


밭엔 참외 황금빛으로 영글고 오이가 주렁주렁 달릴 거며

토마토도 새빨갛게 특유의 향기를 뿜어내며 익어갈 겁니다


달포 전 심은 모는 찰랑이는 흙탕물에 겨우 목만 내놓고 

간당 거리던 녀석이 제법 짙은 푸른빛을 내고 

포기를 넓히며 태양을 집어삼킬 듯 부스럭거리며 자라고 있을 거예요


빨래가 푸른 하늘에 새하얗게 흩날리면 그리움도 덩달아 흩날리며 

뭉게구름처럼 떠가는 상념을 곁에 앉혀놓고선 

농담을 퍼내며 방긋 웃음을 지을 터지요




아이들은 티브이를 보며 박장대소하고 마누라는 빨래를 개고 

나는 베란다 정원에 앉아 물끄러미 유영하는 물고기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어느 시절 여자 아이 귀밑에 흩날리던 머리카락처럼 

이러저러 유월을 휘젓는 상념에 젖어 고운 미소를 부어 올립니다





남해군에서




커다란 감나무 아래 자리 잡은 우물은 빨려듯어갈듯 깊고 

어둑 컴컴하여 무시무시한 두려움과 호기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시커먼 어둠 아래 늘어진 줄을 당겨 올리노라면

싱그런 물이 두레박 안에 찰랑찰랑 떠올랐습니다

우물물은 신기하리만치 차갑고 시원하니 물맛이 참 좋았습니다


한여름 저녁 무렵이면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엎드린 등짝에 

얼음을 끼얹듯 쏟아지던 물줄기 오싹한 차가움에 

깜짝 무더위를 잊고 땀을 씻으며 온종일 지친 농사일의 피로를 씻기며

으스스 몸을 떨게 하던 등목의 짜릿한 아련함이 

저녁 바람을 타고 흥겨운 노랫가락처럼 귓가를 울립니다


더위와 시원함 그리움과 동경 이별과 비, 돌아오지 않는 추억의 시간

잊었던 시간의 빗줄기를 타고 흐르는 인생의 짧은 그리움들

어느새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었음에도 여전히 어리석고

여리며 분별하기 힘겨운 삶의 기이한 일들을 떠올리노라면,

한낱 아이에 지나지 않음에 허탈한 듯 너털웃음만 날아오릅니다




그리움

시간의 빨랫줄

저만치 멀어지는 시간의 그림자와 여기 코앞에 서 있는 보고픔

곁에 있는 사랑스럽고 떠올려 마냥 좋기만 한 아리따운 것들

그렇게 시간은 익어가고 이렇게 날은 저물며

여전히 이어지는 상념은 싱그럽고 상큼하기만 합니다





남해군 해수욕장




이런 여름 유월의 상념들 유쾌한 시간 신비로운 시간의 유희가 있어 

여름날은 후련하고 싱거우며 고상한 듯 흥미로운가 봅니다


파랑 바다 푸르고 드넓으며 맑고도 시원시원한 칠월의 바다가 

마구 그리워집니다


먼데 여름날의 뜨거운 바람이 텅 빈 가슴을 휘어 뜨리려는 듯 상큼 당기다간 띵하니

놓아버리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곤 없습니다



동네 뒷동산 개울가






휘파람


2016

06


*

표지 사진은 순천 선암사 수연산방이란 연잎밥 집에 핀 백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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