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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Jun 10. 2016

허물어진 골목의 상큼한 반란

개항장거리 차이나타운 동화마을 신포시장 자유공원 제물포 동인천 


 영광의 뒤안길을 거닐다가 길을 잘못 든 듯, 잠시 발길을 돌려 익숙한 길가를 한걸음만 벗어나 본 적이 있는가? 만원 버스에 잠시 졸다 첫사랑 그녀를 만나던 순간처럼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천의 개항장거리이다. 우린 신비로운 역사와 삶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번영하는 제물포 쇠락하는 인천


 잊힐 듯 잊히지 않는 것을 그리움이라 부르고 미워도 다시금 그리운 것을 정이라 하며 멀어질수록 다가서고픈 안타까움을 보고픔이라 한다. 

 한때 제물포는 대한민국 쌀의 50% 이상을 취급하던 대한 제일의 항구 도시였으나, 경인도로와 경인철도의 개설로 그 번영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인천항의 물자를 직통으로 서울로 운반하기 위해 건설된 철로와 도로는 인천을 서울의 종속 도시로 만들었던 것이다. 인천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모양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동과 서로 이어지는 서울행 도로만 건설되어 경인도로와 경인 철로는 인천을 두 개로 단절시켰다. 그 결과, 인천은 경제적으로 몰락했고 명문 학교가 사라졌으며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이렇다 할 업적이나 인재가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인천에는 중심지가 없다. 쓰레기 매립도로는 쓰레기만을 버리기 위해 존재한다. 공항고속도로와 공항철도는 공항 인구를 서울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인천광역시 한가운데에는 서울과 경기도의 쓰레기를 쌓아두는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앉은 볼썽사나운 도시가 되어 버렸다. 인천은 서울의 그늘 아래 신음하고 있다. 

 “제물포, 그것은 조선이 열어놓은 출입문의 오직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한 출입문이었다.”주요섭 ('구름을 잡으려고' 중에서 1935년, 경인일보)




 탐욕의 세월 


 석양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미두 취인소 터를 바라보며 발길을 멈춘다. 한때 한국은행이었다가 한국은행 인천지점이더니 주택은행이 되고 현재는 국민은행 신포지점이다. 

 미두(米豆)는 글자 그대로 쌀과 콩을 말한다. 실질적으론 미곡시장을 장악하고 쌀을 일본으로 약탈하려는 의도로 1896년 설립된 인천 미두 취인소에선 현물 없이 일정 기간을 두고 쌀과 콩의 거래가 가능했다. 오늘날 선물 거래와 유사하여 어마어마한 투기가 성행했다. 교묘하게 시장을 조종한 일본인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었지만, 조선인들은 무참히 망할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반복창이라는 투기꾼은 20대에 신들린 듯 한 투기술로 미두 선물거래만으로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그러나 채 3년이 되기 전에 빈 털털이가 되고 만다. 

 네덜란드 튤립 열풍처럼 어느 시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으며 군중심리에 휩쓸린 대중의 탐욕은 폭발하고야 마는 극단까지 가고 나서야 비로소 멈추어 서는가 보다. 



신포동 골목길



  골목골목 피어나는 이야기들


 신포시장의 닭강정을 먹을까? 아니면 차이나타운의 대한민국 최초의 자장면을 먹을까! 신나는 고민을 하던 중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벗 삼아 신포 국제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정겨운 시장의 소리들, 코를 간질이는 맛깔스러운 내음들, 북적이는 사람들 목소리가 왁자지껄한 시장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기나긴 사람의 행렬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포 닭강정을 먹으려고 인산인해를 이루며 늘어선 줄이다. 맛이란, 더구나 싱숭생숭함이 아닌 제대로 된 진짜 맛을 누리고 싶다면 이만큼의 기다림은 차라리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매콤 달콤 신포 닭강정을 맛나게 먹고 대한민국 최초라는 상큼 쫄깃한 신포 쫄면에 신포 만두를 맛보고 대한 제일의 중화요리를 맛보며 이리저리 시장 골목을 구경하노라면 발걸음은 어느새 개항장거리에 이르게 된다. 비록 서구 열강에 강제로 개항을 당한 곳이기는 하여도 어찌 되었든 외국 문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이고 새롭게 단장하여 경제 강국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 바로 이곳 제물포항을 품은 인천임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뭔지 모를 뿌듯함에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한다. 

  제물포항엔 항구의 낭만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그 낭만은 선남선녀의 가슴을 꽃향기처럼 흔들곤 했다. 그래서 대한 제일의 도시였던 제물포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청춘남녀가 찾아와 연정을 나누느라 법석을 떨곤 했던 것이다. 김소월의 시를 한 구절 읊어보자.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 

밤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굴조차 잊힐 듯해요

벌써 해가 지고 어두운데요 

이곳은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닷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중략             제물포의 밤 중에서 - 김소월  


 인천항의 낭만은 이토록 찬란했고 제물포의 밤은 그토록 구슬프고도 아련하기만 했다.



제물포 구락부(클럽의 일본식 발음)



 텅 빈 채움을 거닐다


 개항 역사 백 년의 거리 개항장 지구, 응봉산 남촌의 땅을 외국인에게 빼앗기고 북촌으로 쫓겨난 사람들,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 그리고 그런 슬픔을 딛고선 제물포의 번영과 쇠락 그런 굴곡진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개항장거리를 걷노라면, 화려함 이면에 깃든 그림자처럼 골목골목엔 아스라한 시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그 속엔 여전히 구수하고 정겨운 사람 내음이 여기저기 피어오른다. 그래서 신포시장에서 개항장거리를 지나 차이나타운으로 그리고 송림동 동화마을과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현장인 북성동과 만석동 인천의 명문 제물포고를 굽어보며 자유공원을 오르노라면 훤히 펼쳐진 인천항이 가슴에 맺힌 체증을 풀어주며 하루의 고단함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또한 골목골목 빼곡히 들어찬 가지각색의 음식점의 연륜은 한 오십 년은 넘어야 장사 좀 했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를테면 신포 시장의 닭강정, 쫄면과 만두, 민어 칼국수와 민어회까지. 대한민국 최초의 자장면으로 신포시장 인근 중화요리 집과 차이나타운 관광특구, 화평동 냉면거리, 삼치골목과 순대골목까지 이름도 모를 골목골목의 무수한 맛집들. 그리고 인천 종합어시장의 활어부터 절인 생선에 말린 생선까지. 


 세상의 흐름을 순리처럼 따랐다면 제물포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고 인천의 삶은 훨씬 나아지고 윤택해지며 외세의 지배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도약하는 인천은 밖으로는 경제 자유구역이라는 신시가지로 번영하고 있으며 안으로는 개항장거리를 중심으로 구도심이 새롭게 부흥하고 있다. 인천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교육의 현장이자 관광과 맛 그리고 공연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러한 멋과 긍지가 묻어나는 인천엔 구수한 바다내음만큼이나 걸쭉한 이야기와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 




차이나타운 패루
차이나타운 패루




 모든 것의 끝에서 출발은 새로운 준비를 한다. 인간의 역사가 그랬고 우리네 삶이 또한  그래 왔다. 인천 개항장 거리엔 깃발이 휘날리며 거리는 사람의 물결로 가득 하다. 개항장거리엔 세상모르고 즐거이 거니는 젊은 발걸음들만 사랑을 품은 듯 헤벌쭉 종종걸음으로 분주하다. 역사의 풍랑은 잔잔해지고 우리들 가슴에도 어미 품처럼 따스한 평화가 깃든다. 사람 내음 가득한 인천의 새로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마치 허물어진 골목 그 처연한 빛에 일어서는 가녀린 한 떨기 풀잎의 그리움 그 찬란한 보고픔처럼. 




휘파람

201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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