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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Aug 12. 2016

시간의 젓가락

추억의 풍경들




시간의 젓가락


사랑은 떠남을
그리움과 보고픔이란 꽃봉오리에
고스란히 머금는 것일까?

감나무 아래 시커먼 우물에 은빛으로 찰랑이는 물결을 두레박으로 길어
등짝에 은방울을 끼얹으면 삼복더위는 깜짝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사랑은 등목 같은 거 아닐까? 

아궁이 불길이 용의 불길처럼 들락거리면 가마솥엔
황소 눈망울 같은 물방울이 껌뻑인다
푸른 어둠에 잠긴 부엌문 틈으로 들어온 빛줄기 위에선 먼지가 춤을 춘다

뜨거운 목욕물이 담긴 고무 대야에 무럭무럭 허연 김으로 차오르고  
뜨거워 저항하는 보드라운 몸 덩이는 순식간에 밀려들어가고야 만다
목이며 사타구니를 뻑뻑 밀어대던 아픈 듯 흥겨웠던 목간이 시작된다

꼬랑지에 노랑꽃을 달고 매달린 다 자란 첫 오이를 따
수건으로 벅벅 문질러 닦아주시던 싱그럽고 상큼한 오이 향기가
피어오르던 손길 그 모습을 빤히 바라다보던 사랑의 눈길은 어디로 간 걸까!

차가운 바람만 불어대는 에어컨 바람이 낯설기만 하다
정자나무 아래 불어오던 싱그런 바람이며
황금빛깔 참외 향기로운 토마토 서리처럼 빛나던
아삭 달콤한 수박이 입맛을 다시게 하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찐 옥수수 고소함이 매미소리에 아련하기만 하다

장마가 질 무렵 마늘과 감자를 캐고 말라버린 과일 줄기들을 걷어 낸  
밭엔 김장을 시작하는 시절이다.
무더운 여름 은방울을 뚝뚝 흘리며 밭일을 한다. 배추와 무 파종을 하고
비가 오는 사이로 깻모를 옮겨 심고
한편에선 이제 막 벌겋게 익기 시작한 고추를 따기 시작한다.

농사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해가 지는 시각에서야 비로소 휴식이 오며 
푸른 하늘에 말갛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멍석에 호박잎을 쪄서 저녁을 먹고 나면 
시원한 바람은 매미소리 그친 여름밤을 쉼으로 이끈다.

치밀어 오르듯 시커먼 풀빛은 태양을 집어삼킬 듯 
무성하게 가을로 들어선다.

길길이 날뛰며 거침이 없던 무더위도
비 한번 내리고 나면 순식간에 기운이 꺾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저녁 바람은 쓸쓸해지며 
아침 공기는 서늘해지고 그리움 떨구는 낙엽에 쌓인 눈처럼
시간의 흔적을 두리번거리며 고독에 비틀거린다.

보고픔과 그리움은 귀뚜라미 소리에 웅크리고
서리처럼 들러붙다 사라지는 만물이 시들어버리는 가을 햇살 아래
나뒹구는 벌레들 사이로 시간을 왜곡하기라도 하려는 듯 
초록빛을 더해가는 무와 배추만 낯설고 혼란스러워
겨울 창에 들러붙어 서성이는 서리 맺힌 망각을 이끌어 
고독을 잦아들게 한다.

시간은 멀어지고 이별은 코앞인데
사람들은 어찌 그리 멀리만 있는가!








휘파람
201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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