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도 밤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사시사철 사철나무
초목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니 참 재미나고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무수하고 수많은 초목 중에
참나무 이야기가 하나 생각납니다
참나무는 상수리 나무라고도 하며 떡갈나무라고도 합니다
종류도 참 많습니다
내 살던 시골에서는
이 나무의 열매 중 가냘프고 길쭉한 것은 도토리로 불렀으며
털옷을 입으면 털 도토리 도톰하니 쌀처럼 생긴 옷을 입으면 쌀 도토리라 불렀는데 잎사귀가 컸습니다
여름이면 잎사귀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서 총싸움놀이나 칼싸움놀이를 하며
온 산을 헤집고 다니던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겨울이면 수수깡에 우산살을 갈아 꽃아 화살을 만들어 활을 쏘며 놀거나
노간주나무를 잘라 창으로 만들곤 눈 오는 날이면 토끼나 장끼를 잡는다고 온산을 뛰어다니며
설쳐댔지만 한 번도 잡은 적은 없습니다..
반면 동글하며 덩치 커다란 녀석은 상수리라 불렀는데 잎사귀는 작았습니다
도토리나무는 잡목처럼 작은 나무가 많았던 반면 상수리나무는 커다란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땔감으로 베어간 때문일 것입니다..
상수리가 익을 무렵인 가을이면
우리들은 상수리를 주워 흙이나 모래에 묻어 두고, 그중 큰 놈을 골라서는 돌아가며 탕탕 내리치고 그러면
모래가 벗겨지면서 숨겨놓은 상수리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러면 그것을 가져가는 놀이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들이 즐겨하던 놀이들은 태반이 마당에서 하는 놀이라
금을 긋거나 돌이나 막대기 혹은 수수깡 등을 이용한 놀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참나무에 이상한 일이 발견되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멀쩡한데, 유독 참나무만이 무릎 부근이 헐고 넓어져
움푹 팬 것입니다.
가끔 그 속에서 새하얀 진물이 거품처럼 흘러나오면 사슴벌레나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샛노랑 말벌이
한가로이 그 즙을 맛있게 빨아먹곤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움푹 파인 연유는 바로 상수리를 따기 위해 물매로 나무를 치다 보니 생긴,
참나무에게는 상처였던 것입니다.
참나무의 애환은 그가 상수리라는 맛있는 열매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아무리 비료를 주고 치료를 해도 상수리나무에 깊이 파인 상처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나무들은 이리저리 어울려 굽이치며 살아갑니다
누가 햇빛을 막아도 아무 말없이 또 다른 저편으로 돌아서 해를 찾아 휩니다
해를 막는 것은 다스릴 수 있지만,
그가 당한 상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상수리나무의 특이함은 그래서 생겨났고, 아직도 남아있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어딘가에 무언가 결과가 된 원인이 숨어 있으며,
찬찬히 살펴보면 그 안에 또한 순서가 있습니다.
참나무의 애환에도 경우는 있고 선후가 있습니다.
참나무의 설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수리는 열리지만
그런 세상은 참으로 암울하고 슬픈 것입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커다란 물매로 온 동네 참나무를 텅텅 쳐서는 시퍼런 상수리까지 송두리째 따가서
묵을 쑤던 사람은 어느 추운 겨울날 무성하고 으리으리한 상수리나무를 땔감으로 베어갔습니다
지나는 길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모아 그럭저럭 묵을 쑤어 드시던
동구 밖 아주머니는 그 나무를 지날 때면
'가을 내내 물매에 고생이 많았구나' 하면서 쓰다듬곤 하셨습니다
휘파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