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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Oct 01. 2016

황매산에 무너진 절집 영암사에서

폐사지에 풀어헤친 시간의 섭리











우뚝 선 화강암 절벽을

병풍으로 둘러친 소나무 숲에

천년을 무너진 절집에 우두커니 서선

어릴 적 빈 집을 홀로 지키던 강아지처럼 무던히도 터를 지켜온

쌍사자 석등이 그립고

보고파 달려간 가을 영암사터엔

을씨년스런 바람과 음산한 기운이 멀리 황금빛으로 물드는 벌판을

초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을 씻어 내리고

그리움을 곱씹으며

보고픔을 쑥부쟁이 가녀린 비벼댐으로

너털웃음 지어 날리는

탑이랑 석등이랑


사람이랑 나무랑 기와는 모두 빗물에 씻겼는데

모두 사라진 터

저쪽에

새로운 절집이 들어섰고

앞자락엔 막걸리 파는 인심 좋은 부부가 냇물에 독을 씻고

바람은 폐사지를 빙글 도는가 싶더니

티끌처럼 훌쩍 날아가 버리고 만다


영암사

황매산

그리고 쌍사자 석등이랑 나그네가 나란히 서서

먹먹함이랑을 세월을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인연과 우연

사랑스런 운명과 숙명을 가지런히 풀어헤쳐놓는다


순간이라는 찰라가


발걸음을 서성이고 배회하며

바람처럼

알 수 없는 시간 속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 사이로 사라진다












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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