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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Sep 08. 2017

추석빔과 어른 사이에서

이별과 그리움



추석빔!

장만 하셨나요?


웃음꽃을 활짝 피우면서조차 눈앞이 흐릿해집니다

마치 환한 햇살에 쏟아 내리는 빗물처럼요

모든 것이 떠나고

모든 곳은 그리움을 남깁니다

더러는 흔적도 없이 스러지고 더러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보고픔 품은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만물이 시들읍니다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티끌처럼 바람처럼 흔적 없이 지나간 기억들처럼요


오래전 아주 오래전 노래가 들려옵니다

내 아이들 지금 나이보다도 훨씬 어린 날의 노래입니다


오늘은 주말을 달려갑니다

구월 두번째 주말이요

가을 첫 번째 주말이고

여름 마지막 주말입니다


만년설을 중년의 사내가 거닐읍니다

차거운 얼음아래 창백한 주검이 보입니다

가만 보니 자신을 참 많이도 닮았습니다

마치 자신의 젊은날 모습입니다

가만 다가서 살펴보니 오래 전 산에서 실종된

자신보다 어린 아버지 모습입니다

하비 키텔과 포레스트 휘테커 주연인 '스모크'라는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가을 햇살이 식어갑니다

잎새에 앉은 때깔이 차츰 누르스름해집니다

차거운 시간의 칼날에 내려앉은 세월이 하득하게 흘렀습니다

시려운 그리움도 낡아지고 색이 바래갑니다

풍성하니 수줍은 빨강 사과랑 달콤 배가 황금빛으로 탐스럽구요

푸른 대추는 가을빛을 품은 갈색반짝 달콤 유혹으로 익어갑니다

밤톨은 대가 돌아 고슴도치 같은 가시공을 열어 영롱한 빛을 뽑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을 과일 절정은 홍시일겁니다

해처럼 말갛게 떠선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보드라운 달콤함이 온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하게 합니다


가을은 이별 앞에 선 풍성하고 풍요로운 과일입니다

모든 걸 잊게 하고 받아주며 잠시 뒤로 미루게 하는 넉넉함을 지녔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꿈과 희망을 자제하는 것 '


낡아빠진 추억이 스멀스멀 일어섭니다

이맘 때 즈음 섬유 특유의 냄새를 품은 추석빔이 떠오릅니다  

장롱 깊이 묻어둔 옷을 꺼내 행복한 미솔 지읍니다

추석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고대합니다


이만큼 흘러보니 추석빔도 없고 일가친척을 만나는 설렘도 사라졌습니다

바램과 떨림과 기다림을 망실한 이 즈음이 저만치 혼자 핀 맨드라미처럼 서럽습니다

떨어질 낙엽을 가만 바라봅니다 보잘것없습니다

찬찬히 바라보니 우리네 삶이란 것이 그와 눈곱만큼도 다르지 않습니다

뭔가 그럴듯하고 다를 것 같고 왠지 우쭐할 뭔가가 하나 더 있을법한데 그렇질 못합니다


하얀 웃음 해맑은 얼골이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움은 보고픔에 무성해지는데 어머님 지는 햇살에 시드는 가을 풀은 자잘하게 기울읍니다 여름을 넘어가며 다가오는 바람이 더없이 서늘합니다


그냥 웃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을 붙들고 왈가왈부하거나

서글퍼할 때는 지난 까닭입니다

추억의 노래를 들으며 갈 들판을 달립니다

황금물결 출렁이는 가상사리마다 향기로운 코스모스 하늘거립니다

들판 끝 산등성 지는 햇살에 억새꽃은 해를 따라 서해바다에 잠깁니다



망각의 푸른 강가에 사색의 갈대가 흔들립니다 물빛에 보름달이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시든 풀잎은  흔들리지않습니다 고요를 가로질러 기러기가 날아옵니다


아빠! 나랑 놀아줘!!

반가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럴까!


눈부신 햇살이 아침 창을 주황빛으로 물들입니다

이번 추석 연휴엔 녀석이 좋아하는 맛집 여행을  떠나야겠습니다 아들이랑

시끌벅적 맛집 검색을 합니다

벌써부터 군침을 다십니다

가슴이 부풀고 설레입니다

참 오랫만입니다

기지개를 켭니다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대여섯살 때부터 들어온

자글거리는 전축에서 울려퍼지던 전주가 인상 깊던 노래입니다



 

https://youtu.be/tX9sB98RR7U


1. 본문의 사진은 프랭크 밀러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영화 씬시티2

2. 본문 ' ' 안의 문장은 '결혼의 풍경'과 '산딸기'의 스웨덴 영화 감독

잉마르 베리히만 영화 'Autumn Sonata' 에서






2017

가을

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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