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과 미완의 마지막 손짓

[Review] 연극 '삼매경'

by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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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삼매경》은 연극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의 본질을 거듭 묻는 메타연극의 전형적 장치를 활용한 작품이다. 메타연극이란 연극 속에 연극이 존재하며, 등장인물조차 자신이 연극 속 인물임을 자각하는 장르이다. 《삼매경》은 이 자각을 무대 위 배우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강하게 요청한다. 극 안의 배우와 극 밖의 배우, 인물과 연기자, 삶과 예술이 서로를 침범하며 존재의 경계를 흐린다.


극의 시작부터 어린 도념과 배우 지춘성이 무대에 등장하여 대화를 나눈다. 이 장면은 배우 간의 상호작용인 동시에, 캐릭터와 배우가 서로의 정체성을 가로지르며 나누는 대화다. 연극의 독특성과 오늘날 연극계의 소외 현실에 대해 나누는 대사나 관객을 의식한 대사들을 통해 작품은 관객에게 이 무대가 허구이면서도 실제라는 이중적 긴장감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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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춘성 배우는 이 작품의 중심 서사와 감정의 축이다. 그는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30년 연기 인생 동안 한 번도 진정한 ‘도념’이 되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바로 이 실패가, 이 연극의 출발점이다. 《삼매경》은 한 인물이 아니라 한 배우가 지각한 주관적 실패와, 재현 불가능한 이상형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시작된다.


작품은 배우가 자신의 삶을 ‘연기의 재료’로 전유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해석의 과정 자체가 배우의 삶을 ‘타인의 감정과 동일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기억과 감정의 덩어리에 휩싸이는 자기 해체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지춘성이 연기하는 도념은 어느 순간부터 배우의 언어로 그를 반추한다. 도념의 대사는 배우의 고백처럼 들리고, 배우의 독백은 도념의 영혼이 빙의된 것처럼 울린다. 어느 순간에는 도념과 배우의 경계가 흐려진다. 작품의 어느 시점에서, 배우가 도념을 6번이나 살해하기도 한다. 그래도 도념은 끝없는 변형 속에서 유령처럼 존재하며 그를 괴롭힌다. 도념을 죽이고 자기 자신이 유일한 도념이 되는 행위는 ‘역할 몰입’이라는 연기 담론 자체에 대한 어떤 극적인 비유기도 하고, 해석 행위에 대한 농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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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경>은 연극에서 보기 드물게 관객의 시선이 서사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구조를 택한다. 관객은 더 이상 외부에 있는 제3자가 아니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관객의 반응을 실제로 느끼는 것처럼 연기한다(작품이 끝나고 관객들의 반응을 상상하는 듯한 대사와 같이). 그래서 관객도 객관화되지 않고, 극에 휩쓸린다.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 관객은 무대 위에서의 감정이 아닌, 배우의 감정 그 자체를 감각하는듯한기묘한 몰입 상태를 만든다. 그래서 무대는 상연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직접 진동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등장인물과 배우, 작품과 현실, 동승과 메타연극이 한데 섞여 ‘삼매경’에 빠지게 만든다.


무대 한편에 고정된 '탈출구(EXIT)' 사인은 우연이 아니다. 이 연극은 끊임없이 스스로가 '연극임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을 관객에게 상기시키면서도, 경계가 흐릿해 정작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를 제시한다. 이 구조 자체가 배우가 갇힌 집착의 세계, 불교적 관점에서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삶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탈출’ 표식은 끝내 사용되지 않고, 배우의 일시적인 퇴장도 이것을 사용하는 대신 알 수 없는 삼도천을 건넘으로써 이루어진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배우가 이 표식을 따라 탈출하거나, 장난스럽게 표현된 죽음을 통해 끝내는 대신 ‘미완성의 삶’을 긍정하며 인사하는 엔딩 자체가 작품의 관계자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인사는 관객을 향한 것이고, ‘긴긴밤 잠이 들지 않을 때 꺼내 먹길 바라는 것’일 것 같다. 나에게는 그것이 이별의 인사라기보다, 환영의 인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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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경》은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과 몰입, 역할과 정체성, 예술과 실존 사이의 끝없는 경계를 탐색한다. 그것은 단지 한 배우의 자전적 체험이 아니라, 배우라는 존재가 무대 위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분해하고 조립하는지를 목격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무대에 남겨진 ‘탈출구’는 끝내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인은 끊임없이 연극이 연극임을 알리면서, 연극 안에서조차 우리는 탈출하지 못하는 어떤 감정, 어떤 기억, 어떤 존재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반문한다. 그리고 그 미완의 감정들은 배우의 마지막 손짓으로 관객에게 건네진다.


연극의 마무리는 집착으로 얼룩진 삶의 탈출이나 종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손짓도 단순한 작별이 아니다. 그것은 관객을 다시 무대 안으로, 혹은 무대 너머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환영의 손짓이다. 《삼매경》은 끝나지 않은 연극이고, 배우는 퇴장하지 않으며, 우리는 살아간다. 작품의 초반에서 예견했듯 이 유령같은 연극은, 나라는 관객을 큰 의미를 남기고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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