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고립, 한국인의 외로움과 그 함정

[Review]도서 '외로움의 함정'

by 진주

'빈곤을 경험하지 않지만, 가난을 느끼는 시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풍요와 기술적 편리함을 동시에 성취했지만, 정작 개인이 체감하는 외로움과 고립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OECD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하위권을 맴돌고,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3%를 넘어섰다. 카카오톡 친구는 수백 명이지만 진짜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은 찾기 어렵다. 직장에서는 성과와 효율성이 관계보다 우선하고, 온라인에서는 완벽한 일상을 연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철저히 혼자인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


1.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

우리는 흔히 외로움을 개인의 성향이나 문화적 기질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책 『외로움의 함정』은 외로움을 사회 구조와 기술적 환경이 만들어낸 조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개인 심리를 교정하는 것보다 구조를 바꾸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며, 그것이 문명사회의 시민적 의무이기도 하다.


불과 10년 전 '탈조선'과 같은 담론이 대안처럼 떠올랐지만, 이제는 그 언어조차 힘을 잃었다. 외로움과 저출산, 기술 격차로 인한 자본주의적 위기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로 떠나도 소외의 조건은 여전하며, 결국 해결책은 바깥이 아닌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


『외로움의 함정』은 얼핏 보면 에세이처럼 읽힌다. 하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개혁에 초점을 둔 분석서에 가깝다. 저자는 실버산업 연구자이자 현업 종사자로서, 고립을 개인의 성향이 아닌 자본주의적 소외와 기술적 매개가 중첩된 구조적 문제로 규정한다.


한국 사회의 외로움은 몇 가지 구체적인 조건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먼저 극단적 경쟁 사회다. 대학 입시부터 취업, 승진, 결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제로섬 게임처럼 설계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타인은 협력의 파트너가 아니라 경쟁자가 되고, 진정한 관계보다는 이용 가치가 우선시된다.


기술 발달의 역설도 크다. 소셜미디어는 연결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피상적인 관계만 양산했다. 온라인에서는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이미 형성된 관계 패턴을 깨기가 어렵다.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불편하지만 의미 있는 만남들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공동체적 가치가 개인 성취 앞에서 밀려났다. 과거 동네 공동체, 직장 내 비공식 모임, 종교적 공동체 등이 제공했던 소속감과 안정감이 약화되었다. 대신 개인의 스펙과 성과만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기준이 되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관계적 고립을 낳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외로움의 함정』이 제시하는 해법들은 개인 차원과 사회 차원으로 나뉜다. 개인 차원에서는 관계 맺기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대신 취약함을 드러낼 용기, SNS상의 관계를 오프라인으로 연결하려는 노력, 경쟁보다는 협력을 우선하는 태도 변화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외로움을 개인적 결함이 아닌 사회적 조건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첫걸음이다.


사회 차원에서는 정책적,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 직장 내 관계 형성을 위한 환경 조성, 지역 공동체 복원을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 제공, 1인 가구 증가에 대응하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그 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2.실천서에 에세이적 테이스티

실제로 이 책이 단순한 실천 지침서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책의 곳곳에는 에세이적 문체와 문학적 참조가 적절히 삽입되어 있다. 저자는 분석심리학이나 문학적 인용을 통해 건조한 구조 분석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끌어오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그가 바란 것은 그 너머의 어떤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하련다"라는 저자의 태도 속에는, 실천적 학자이자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저자의 얼굴이 동시에 비친다. 이는 책 전체를 차갑지 않고 독창적으로 만드는 힘이 된다.


『외로움의 함정』은 학술 연구서처럼 빽빽하지는 않지만, 고립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요인을 실천적 관점에서 정리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외로움이 개인의 성향 차원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소외와 기술적 매개가 중첩된 구조적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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