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 안녕
안녕. 우리나라에선 만났을 때 서로 안녕을 묻고, 헤어질 때도 서로에게 안녕을 고한다. 그런데 그 안녕함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컵이 안녕하지 못함은 깨지거나 금이 가서 더 이상 액체를 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칼이 안녕하지 못함은 아무것도 베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빵이 안녕하지 못함은 상하여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시장이 안녕하지 못함은 사람들 간의 신뢰가 깨져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는 것이다. 곧, 어떤 존재가 안녕하지 못함은 그 존재가 존재를 잃게 됨이다. 안녕하지 못한 존재는 물질적으로 여전히 존재하나, 실존을 잃은 존재이다. 마치 유리컵이 깨지면 유리는 여전히 존재하나, 컵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서로에게 묻는 안녕하냐는 물음은 단순히 나와 당신이 물질의 집합으로 잘 보존되고 있냐는 물음이 아니다. 나와 당신이 각자의 삶에서 존재를 온전히 증명하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나와 당신이 이 세상에 여전히 개별적으로 실존하느냐는 물음이다. 나와 당신이 여전히 나와 당신으로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