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준비하며

by 모아진빛

어느 날 문득 나는 엄마를 떠나야겠다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상담교육을 공부하며 ‘나’를 주인공으로 한 사례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내가 가진 많은 문제의 시작점엔 외롭고 불안하던, 하지만 자존심 강했던 젊은 시절의 엄마가 서 있었다.


“너 때문에 내가 참고 사는 거야. 너네 아니었으면 이렇게 안 살았어.”


‘너희 아빠가-’로 시작하던 하소연은 언제나 나를 엄마의 편으로 끌어들이며 마무리됐다. 나는 그렇게 괴로워하면서도 나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 엄마가 고맙고 애달팠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분노했고, 같이 원망했으며, 홀로 희생하기도 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나는 그래야 한다고 나나 되니까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오던 어느 늦은 밤, 나는 밤늦게까지 과제를 하다 문득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엄마를 떠나야겠다 결심하게 된 것이다.

떠나야겠다 결심이 서고 나니 조바심이 일었다.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확인하고, 부동산 앱을 켜 직장과 가까운 동네의 아파트와 빌라, 원룸을 하나하나 눌러보았다. 직장에서 30분 이내의 거리에 있는 동네에서 시작해 통근이 가능한 수준의 동네까지 한참을 이어진 앱 탐방 후 다시 부랴부랴 과제로 돌아와야 했지만, 떠나야겠다는 다짐은 그날부터 때때로 장작을 더해가며 가슴속을 은근하게 데우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살면서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엄마와 대화라는 걸 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 나는 엄마의 딸이자 엄마의 친구였고, 엄마이자 엄마의 남편이었다. 신체적인 분리는 둘째 치고 심리‧정서적으로도 우리는 너무나 가까웠다. 이렇게 살아온 30여년을 등지고 나는 엄마를 떠날 수 있을까? 상상 속에서 나의 집을 하나하나 꾸미다가도 나는 다시 현실로 끌려와 혼자가 될 엄마를 마주했다. 거실엔 가로로 긴 책상을 놓자. 방 하나는 안락한 침실로, 또 하나는 책장과 전자피아노, 운동 매트를 깔아 취미방으로 쓰자. 즐거운 상상을 하다가도 모두를 떠나보낸 뒤 혼자 지낼 엄마의 쓸쓸한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떠난 후 엄마는 어떻게 살까.’



어쩌면 의외로 잘 지낼지도 모른다. 엄마는 밝고 씩씩한 사람이니까 그동안 못 해본 여러 취미들을 만들 수도 있겠지.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밥을 먹고 동네 수영장으로 가 아침 수영을 배울 것이다. ‘Y 엄마’ 대신 이름으로 불리며 왕언니이자 클래스의 대장이 되어 아침부터 신나게 발을 구르고 물장구를 치며 힘차게 하루를 열 것이다.

“언니, 그 수영모자는 뭐야. 알록달록하니 예쁜데?”

“이거 우리 딸이 엄마 수영 배운다고 선물로 사줬잖아. 수영복도 세튼데 아까워서 수영복은 아직 못 입잖어.”

“역시, 이래서 딸이 있어야 돼.”

물이 들어가 멍멍한 귀 때문에 그새 친해진 아줌마와 커다란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엄마는 웃는다. 좋아하는 색의 꽃으로 알록달록 화려한 수영모자가 레일을 따라 움직인다. 이쪽저쪽 물살을 가른 뒤 개운하게 샤워를 끝낸 후엔 같은 수업을 듣는 아줌마들과 함께 수영장 근처 쌀국수 집으로 식사를 간다.

“수영을 하니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너스레를 떨며 쌀국수를 후루룩 삼키는 엄마의 불룩한 볼이 위아래로 씰룩인다. 밥을 다 먹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아들이 준 ‘스벅 기프트 카드’를 내밀어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부터 운동을 해 몸이 가뿐하다.

가뿐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 간단한 집안일을 몇 개 끝낸 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튼다. 텔레비전을 보는 엄마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우리들이 있을 땐 시간이 없어 손도 못 대던 코바늘로 수세미부터 모자, 가방까지 이것저것 완성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한참 손을 움직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는 벨소리를 따라 잠시 잊어두고 있던 핸드폰을 찾아 나선다. 싱크대 옆에서 핸드폰을 집어든 엄마는 전화를 걸어온 친한 아줌마의 이름을 확인하고 반가운 얼굴을 한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모시모시-’ 애교스러운 인사를 건넨다. 이제 집 안에는 통화소리가 크다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목소리를 줄이지도 않고 요 근래 사는 이야기, 그동안 힘들었던 이야기,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를 한다.

통화를 마치자 창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부엌으로 간 엄마는 밥통을 열고 콩밥을 가득 푼다. 콩을 싫어하는 우리들이 떠난 후 엄마는 콩밥을 맘 편히 해 먹을 수 있다. 소박한 밑반찬들과 함께 맛있게 밥을 한 그릇 비운다. 밖은 이제 어두워졌다. 엄마는 저녁 드라마를 보며 빨래를 개고 이부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든다. 미처 끄지 못한 텔레비전의 불빛이 잠든 엄마의 얼굴 위로 쏟아진다.



‘엄마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두렵고 무섭진 않을까?’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걱정한다. 상상으로 꾸미고 있던 나의 집은 아직 정리도 못한 채다. 엄마의 방은 낡고 익숙하다. 이 손때 묻은 물건들을 물티슈로 훔칠 엄마의 마음을 염려한다. 그러다 불현듯 다시 생각한다. 내가 염려하는 마음은 누구의 것인가.



오늘도 나는 내가 떠나 살 집을 상상한다. 침대는 넓을수록 좋으니까, 안방에 놨던 슈퍼 싱글 침대를 치우고 퀸 사이즈 침대로 바꿔 놓는다. 요리하고 먹는 걸 좋아하니까 부엌 공간은 넉넉한 게 좋겠다. 떠나야겠다는 결심은 아직 단단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떠나야할 뿐만 아니라 나 역시 떠나보내야 함을 안다. 내 마음속의 젊고 불안하고 외로운 엄마를, 그런 엄마의 옆에서 엄마에겐 나뿐이다 되뇌던 어린 나를.


떠나야지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상상 속 나의 집을 꾸미며 나는 내가 떠난 뒤 마주하게 될 것들을 생각해 본다. 내가 없이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 씩씩한 할머니가 된 엄마와 이젠 정말 ‘나’만으로 온전히 채워나갈 진짜 나의 삶. 일주일에 한두 번은 서로 통화하며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잔소리를 교환하다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들과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고선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서로의 번호를 눌러 일상을 나누는 선선한 다정함을 떠올려 본다. 그렇게 언젠가 만날 건강한 두 모녀를 떠올리는 일이 퍽 즐거운 요즘이다.


2024년 6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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