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궐 (Rampant, 2018)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좀비 떼가 부산으로 향했던 '그 여운'이 가신지 2년 후. 조선 제물포의 황량함이 핏빛 서리를 예고한다.
영화 창궐(이하 창궐)은 조선시대, 청나라에서 돌아온 왕자 이청(현빈)이 제물포에 창궐한 야귀 떼와 맞서 싸우는 박종사(조우진) 일행을 만나 합류하게 된다. 이미 김자준(장동건)은 조선의 새로운 왕이 되기 위해 수를 쓰고 그것을 막기 위한 이청과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창궐은 개봉 전부터 야귀 액션 블록버스터, 조선판 좀비 영화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어디서든 창궐을 언급할 때 야귀 혹은 좀비에 포커스를 담고 꼬리말로 블록버스터와 같은 수식어로 큰 스케일을 암시했다. 예고편에서도 나오듯 야귀와 큰 스케일은 관객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준다. (한편으론 예고편만큼만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날이 밝아 해가 오르는 아침이면 야귀들은 햇빛을 피해 지붕이나 굴, 어두운 곳으로 숨는다. 말 그대로 밤에 나타나는 귀신인데 현대의 좀비 혹은 흡혈귀와 유사하면서도 조선이란 배경을 뒤로 하니 저고리와 한복이 썩 나쁘지 않다. 또한, 야귀 분장과 움직임들로 하여금 특수분장팀과 무술팀의 노고가 느껴진다. 후반으로 갈수록 야귀의 수는 많아지지만 이청의 움직임에만 화려함이 느껴지고 야귀가 주는 긴장감은 온 데 간데없어 왠지 힘이
빠진다.
야귀는 어디서 왔는지 영화 초반에 출처를 보여준다. 불분명하지 않아 납득이 간다. 하지만 야귀들이 흩어져 나가는 범위와 방향은 스케일에 비해 좁고 일방향적이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존재하는 클리셰마저 애매하다. 제물포를 시작으로 한양까지의 경로를 보면 역사적 사건인 임오군란이 떠오른다. 하지만 내용과는 역사적 사실이 엮여 있는 부분이 없다시피 하니 그냥 가볍게 흥미로운 요소로 남겨둘 수 있다.
박종사를 비롯, 덕희, 대길, 만보 등 낮은 신분의 백성(국민)들이 힘을 합쳐 모여 나라를 구하는 모습은 지난 2016년 말의 촛불집회를 방불케 한다. 짧지만 백성들이 횃불을 들고일어난 부분의 묘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작지만 강한 한 사람의 국민이 모이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메시지일까.
주인공 이청이 겪는 시련과 김자준을 향한 복수심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또, 야귀들을 향한 이청의 무쌍 씬들 속에서 힘 없이 쓰러지는 야귀들을 보고 있자니 자칫 지루함에 빠질 수 있지만 빠른 전개가 무마시켜주니 다행이라면 다행. 병조판서 김자준과 조선의 왕 이조(김의성)가 연기력 내공을 더해 무게를 잡아주니 가볍지만은 않다. 영화 창궐은 야귀 액션 블록버스터, 조선판 좀비 영화 등의 수식어를 비롯, 장르와 소재, 시사점이란 수많은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남은 건 발 밑에 떨어진 무르익은 밤송이뿐이었다. 따갑지만 속이 꽉 찬 밤을 어찌 미워하겠느냐만은.
ps. 마치며 다시 한번 삼가故김주혁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