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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행 Nov 25. 2019

여행의 모토는
'돈 떨어지면 돌아간다'

베트남 호찌민

여행 2개월 차

 

보무도 당당하게 베트남을 향해 출발했지만 본격적인 가족여행이 쉽게 시작되지는 않았다.

밤 12시가 넘어서 호찌민 공항에 도착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우리 짐이 나오질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려는데 하얀 비닐봉지에 싸여 나오는 커다란 덩어리가 아무래도 우리 짐 같았다.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우리 배낭 세 개중에 한 개가 갈가리 찢겨 있었다. 안에 있는 짐들도 거의 으스러져 있었는데 짐 운반 레일에 배낭이 끼었다고 했다. 

 졸려서 자꾸 눈이 감기는 준이를 데리고 공항 관계자를 만나고 리포트 쓰고 사진을 찍은 뒤에 짐을 수습해서 호찌민 시내에 도착하니 이미 새벽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찾을 수가 없어서 근처 눈에 띄는 호텔에서 자야 했다.

 다음날, 항공사에 전화하니 공항까지의 택시비도 안 되는 보상금을 제시하면서 공항으로 오라고 했다. 못 간다 했더니 항공사 직원들이 호텔로 찾아와서 자신들 책임이 아니고 필리핀 세부공항 시설이 낙후된 탓이라고 했다. 우리 돈으로 약 5만 원 정도를 보상해 준다고 해서 배낭 값만 20만 원이라고 했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결국 그들이 가져온 서류에 보상금이 너무 적어서 받지 않겠다는 내용을 쓰고는 돌려보냈다. 준이 수영복과 옷가지, 상비약, 필리핀에서 받은 선물이 망가졌지만 여행자보험에 대물보상도 포함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보험사에서 받은 보험금으로 어느 정도 손해를 만회할 수 있었다. 

호찌민 시내 시장에 가서 찢어진 우리 배낭보다 더 큰 배낭을 우리 돈 만 오천 원 정도에 샀다. 그제야 왜 항공사 직원이 배낭 값에 놀랐는지를 알 것 같았다. 호찌민에서 산 배낭은 싸지만 튼튼해서 여행이 끝날 때까지 메고 다녔다.     

베트남에는 쌀국수만 먹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싸고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이런 곳에선 돈 아끼지 말고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이번 여행의 모토를 ‘돈 떨어지면 돌아간다.’로 정했다. 

여행 책을 보면 ‘굶더라도 조금 더 멀리 가고, 조금 더 많이 보고 싶었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읽게 된다. 실제로 최저예산으로 다니느라 식사도 최소한으로 하는 젊은 여행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20대 초반이라면 나도 그렇게 다녔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린 한참 성장기의 아들과 먹지 않으면 바로 방전돼 버리는 중년의 부부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 우리에겐 ‘어디 어디를 가봤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 년 동안 얼마나 재밌게 다니느냐가 더 중요했다.

 이런 생각이라 여행 중에 만난 친구들한테 밥도 사주고 어차피 하는 밥, 나눠먹기도 하면서 다녔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 먼 훗날 가난한 배낭여행객이 된 우리 준이에게 누군가가 밥을 사줄 수도 있겠지.

우리 가족은, 젊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 보단 조금 부유하고 휴가 여행 온 가족들보단 훨씬 가난한 그 어디쯤에 있는 여행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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