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행 Nov 25. 2019

학교생활로 돌아가다

필리핀 세부 어학연수 1개월

|여행 1개월 차|


 필리핀에 오기 전까지 준이는 영어학원에 다닌 적이 없었다. 학원 대신에 영어책을 읽히려고도 했지만 늘 흐지부지 되곤 했다. ‘나중에 크면 하겠지.’하고 배짱 좋게 지내고 있었는데 여행을 결정하고 나니 아무래도 영어가 필요했다. 다른 나라 친구들도 만나고 가이드 설명도 들어야 하는데 준이가 아는 것이라곤 알파벳이랑 간단한 단어 몇 개. 궁금한 것 정도는 본인이 직접 물어볼 수 있어야 해서 여행 일정에 준이의 영어공부를 포함시켰다.

경비가 적게 드는 데다 일대일 수업이 가능해서 첫 여행지로 필리핀을 선택했다. 이왕이면 바닷가에서 놀 수도 있는 곳으로 찾다 보니 필리핀의 세부가 적당해 보였다.      

 어학원에 도착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방을 배정받았다. 부모인 우리도 수업을 받을 예정이라 같은 날 도착한 일본인 친구 2명과 레벨테스트를 받았다. 나이 마흔에 언제 써먹을지도 모르는 영어 공부에, 심지어 레벨테스트라니.

 어학원 바깥쪽은 양철 판자 집들이 닥지닥지 모여 있고 멀리 바다가 보였다. 가끔 수업받다가 창밖을 보면 현지인들의 생활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70년대랑 비슷한 생활수준이었다. 마을 안에 개들이 어슬렁대는 사이로 닭들이 돌아다니고 사람들도 한가로웠다.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했던 것이 이런 한가로움은 아니었을까.

어학원 시설은 낡은 편이라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밥 주고 빨래와 청소도 해주니 주부인 나의 만족도는 당연히 올라갔다.

이곳에서 한 달 동안 하루 6시간씩 영어공부를 했다. 어학원에 머무는 학생은 모두 똑같이 공부해야 하는 줄 알고 남편과 나도 6시간씩 수업을 들었는데 알고 보니 수업시간은 원하는 만큼 선택이 가능했다. 수업을 들어서 친구들 사귀기는 좋았다. 어느새 다른 학생들과도 친해져서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여행 중엔 공부 안 해도 된다고 하더니 이게 웬 공부냐, 한국보다 수업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며 투덜대던 준이의 적응이 우리보다 빨랐다.

처음엔 영어를 전혀 못 해 눈치만 보더니 금방 씩씩하게 아무나 보고 "하이", “헬로"라고 인사를 했다. 인사만 잘해도 의사소통의 반은 된다. 그래, 세상은 그렇게 씩씩하게 살면 되는 거다.

 이곳의 한가로운 일상을 가장 잘 즐긴 사람도 준이였다. 수업이 끝나면 같은 또래 한국인 친구와 수영하고 아빠에게서 당구를 배우는 재미로 한 달을 보냈다. 이때의 다이어리엔 ‘당구, 수영 매일매일’이라는 준이의 메모가 적혀있다.

 기말고사 안 보고 왔다고 기뻐하면서 ‘4학년 1반 시험 잘 봐라’라는 메시지를 바닷가에 조개껍데기로 써놓은 적도 있었다.

 내게도 이곳의 그리운 일상이 있는데 어학원 옆 건물 야외 바에서 수요일 밤마다 영화를 보던 일이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습하고 더운 바람을 맞으며 산미구엘 맥주를 한 병씩 들고 야외테이블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낮에 수영하느라 피곤한 준이는 기숙사에서 자거나 나를 따라온 날은 바비큐로 구워주는 소시지를 먹다 의자에서 잠들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싶은 옆 마을 꼬마들이 울타리에 붙어서 같이 영화를 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수업받고 친구들과 놀고, 우리 부부가 가장 나이 많은 학생이긴 했지만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나 다 젊은 사람들이라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연애를 관전하게 되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데 또 누구는 누구랑 사귀고. 시대가 변해도, 장소가 바뀌어도 청춘들이 짝을 찾는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젊은 친구들은 또 낮이랑 다르게 차려입고 클럽에 가느라 바빴다. 나 보고도 가자고 했지만,

‘좋을 때다. 기회가 될 때, 연애도 많이 하고 놀기도 해라. 춤엔 소질 없는 이 언니는 시원한 어학원 테이블에서 아들이랑 망고나 먹으련다.’      

 젊은 친구들이 클럽에 가고 내가 아들과 망고를 먹을 때, 카지노에서 일탈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인 신혼부부였다.

 이 한국인 신혼부부는 낮엔 안 보이다 늦은 오후가 되면 차려입고 나타났다. 세계여행의 큰 꿈을 안고 출발했으나 카지노에서 돈을 다 잃고 겨우겨우 캐나다랑 멕시코만 갔다 왔다고 했다. 돈 잃을 때마다 가고 싶은 나라를 하나씩 지우다 보니 시간과 돈이 바닥났다. 이럴 바엔 저렴한 필리핀 가서 영어공부나 하자고 왔다는데 그들이 선택한 건 카지노의 천국인 세부였다. 영어공부보다는 카지노를 선택한 고의가 엿보였다. 한 명이 돈을 잃으면 한쪽이 말리는 게 보통의 부부라면 이 부부는 한 명이 잃으면 다른 한 명이 위로하면서 자기 돈까지 건넨다고 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란 이런 부부를 말하나 보다.

 카지노 부부에 필적할 만큼 재밌는 사우디아라비아 친구, 써디.

한국인 중에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열여덟 살인 그는 영어 알파벳의 ABCD는 아는데 EFG는 모르는 채 이곳으로 어학연수를 왔다고 했다.

 할 줄 아는 영어 회화는 오직 두 개.

 ‘노 프러블럼(No problem)’ 과 ‘빅 프러블럼(Big problem)’. 이 두 마디로 모든 의사소통을 했다. 성격도 좋아서 모든 프러블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참 잘 어울렸다. 사우디에서 여자 얼굴이라곤 엄마와 형제밖에 못 봤다는 그에게 술 마시고 클럽에 가는 건 정말 빅 프러블럼 아니냐니까 말없이 웃었다. 나중엔 그의 사촌 형까지 만났는데 빨간 스포츠카를 몰고 비싼 양주를 사들고 왔다. 양주를 나눠 마시며 우린 모두 빅 프러블럼의 공범자가 되었다.     

  어느덧 어학원 졸업식 날이 왔다. 졸업생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 그 학생을 가르친 선생님들도 축사를 했다. 준이의 담당 선생님 조지는 베테랑답게 준이의 영어 연설을 매끄럽게 도와주고 본인도 멋진 축사를 했다. 감사의 표시로 조지의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선물했는데, 이 다혈질의 정 많은 이탈리아계 미국인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옆에 있던 일본 친구 쿠사가 따라 울었다. 우리와 같은 날 도착해서 친했던 쿠사는 우리가 먼저 떠나니 서운했나 보다.

 다음날 우리 가족은 다시 배낭을 꾸렸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학원 앞에서 그동안 친했던 친구들과 단체사진도 찍었다. 우리 가족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었던 친구들은 지금은 각자의 나라에서 어엿하게 잘 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긴 여행 준비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