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
워터홀 :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에토샤 국립공원의 워터홀에서 보낸 밤이었다.
동물들이 물 마시러 오라고 인공 웅덩이인 워터홀(water hole)을 만들어 놓고 동물들을 볼 수 있도록 워터홀 위쪽에 벤치를 만들어 놓았다. 이 벤치에 앉아 밤새 동물들을 볼 예정이다.
워터홀에 가기 전 저녁 미팅에서 자칼이 많으니 먹을 걸 텐트에 놓고 자면 위험하다고 대장인 쏜이 말하자 우리의 준이가 질문이 있다고 손을 들었다.
“그럼, 초콜릿을 텐트 밖에 놓고 자면 자칼이 오겠네요?”
자칼을 만나고 싶은 너무나 아이다운 질문에 모두 미소를 지었다.
이때만 해도 준이는 아직 귀여운 꼬마 같았는데. 아이들이 자라는 거에 비하면 어른은 빨리 안 늙는 거라고 하더니 시간은 아이를 너무 빨리 키운다.
워터 홀 벤치에 앉아 와인을 마시면서 동물들이 오길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니 저쪽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 기린 세 마리가 물을 마시러 걸어왔다. 걷는 모습은 우아하지만 이 기다란 동물은 너무나 예민해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누가 날 노릴까 연신 뒤를 돌아보고 흠칫흠칫 놀라면서 물도 잠깐 홀짝 마시고 돌아갔다.
기린이 가고 나면 마치 그림자 인형극같이 코뿔소가 오고 또 사자가 와서 물을 먹었다. 신기한 건 사자가 와도 물 마실 동안은 괜찮다고 느끼는지 동물들이 도망가지 않고 물을 마신 후에 슬슬 사라진다는 거다. 동물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규칙이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았다.
동물들이 너무 조용하게 천천히 오는 탓에 준이는 벤치에 누워 잠이 들어 버렸다. 우리가 방심한 사이에 아까부터 벤치 뒤에서 기회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오던 자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준이 잠바를 물고 달아났다.
조용하게 동물들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 당황하는 사이에 남편은 벌써 도망가는 자칼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따라가다 안 되니 신발을 벗어던졌다. 날아오는 신발에 깜짝 놀란 자칼은 결국 준이의 잠바를 포기하고 달아나고 남편은 의기양양하게 잠바를 들고 돌아왔다. 먹지도 못하는 이 잠바를 훔쳐다 무엇하려고 그렇게 탐을 냈을까? 방수가 되는 걸 알고 따뜻하게 깔고 자려고 그랬을까?
벤치에서 꿈나라로 가버린 준이를 데리고 우리 가족은 일찍 들어와 잤다. 새벽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사자 무리를 봤는데 덮쳐 올라오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다고 한다.
나중에 볼리비아 아마존에서 만난 스웨덴 커플은 14개월째 세계여행을 다니고 있었는데 철창에 들어가 상어를 구경하는 투어까지 해보았지만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이 워터홀을 꼽았다. 그들도 새벽까지 벤치에 앉아 사자 무리를 보았다고 했다.
이곳의 매력은 고요함이다.
말없이 등장하는 동물들을 바라보다 보면 내면의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