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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행 Nov 28. 2019

'누가 세상을 구할 것인가'와 360원

가난하지만 우아한  짐바브웨

  테베 강변 캠프에서 리버 크루즈를 타고 강에서 하마랑 코끼리 떼를 봤다. 애타게 보고 싶던 하마도 이젠 흔한 이웃처럼 보였다.

 다음날 아침엔 나를 제외한 모두가 동물들을 보러 게임 드라이브를 갔다. 

짐 싸고 빨래 널고 산책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아, 혼자 있는 게 얼마 만인가. 느긋하게 산책하고 강물을 보면서 앉아 있다가 짐바브웨 출신 아저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캠프 앞에 있는 이 테베 강은 강물이 흐르는 방향이 바뀌는 특이한 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짐바브웨의 물가가 너무 올라서 계란 하나를 사려면 바구니로 돈을  가져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까 지금은 미국 달러를 써서 그런 일은 없지만 물가가 빠르게 오르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빠르게 치솟는 물가 때문에 사업상 계약을 해놓자마자 원가가 올라 사업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심지어는 골프를 치는 사이에 맥주 값이 올라있을 정도라고 했다. 남아프리카 투어의 마지막 종착지인 짐바브웨로 가는 사전 정보는 우울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한번 아프리카 태양의 키스를 받으면 아프리카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는 짐바브웨 아저씨의 말처럼 아프리카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회는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 도착한 짐바브웨에서 한산한 아침거리를 산책 겸 둘러보러 나갔다.

백 팩커스를 나오자마자 젊은 청년들이 목제 조각품들을 들고 따라붙었다. 조각품을 티셔츠나 신발, 심지어 수건이랑 교환하자고 끈질기게 따라온다. 일자리가 없는 이들은 나무를 조각해서 관광객들의 생필품과 바꾼다. 조각들의 수준이 높아 보여 착해 보이는 청년의 기린 조각과 준이의 입던 티셔츠를 바꾸었다. 티셔츠에 얼룩이 약간 있어 미안해했더니 상관없다면서 고마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카페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일곱, 여덟 살 또래의 형제가 와서 꼬깃꼬깃 접은 돈을 주머니에서 소중히 꺼내 빵을 사가는 모습이 정겨웠다. 이곳에선 가난해도 아이들이 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른들도 할 일이 없는 판국에 아이들에게까지 돌아올 일도 없을 터였다. 우리가 머문 백 팩커스에서는 형편없는 아침밥이 8달러나 하는 등 관광객 물가는 터무니없이 비싼데 이런 모습과 현지인들의 생활은 대조를 이루었다.

요리사 요요가 자주 듣던 짐바브웨 출신 가수의 노래 제목이 ‘누가 세상을 구할 것인가?(Who’s gonna save the world?)’이었는데 한숨이 나오지만 100% 공감했다. 

가난하지만 우아한 느낌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인 짐바브웨. (백팩커스에서 빨래를 하는 아줌마들까지 목이 길어서인지 품위가 느껴지는 외모들이었다.). 그래서 약간 슬픈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오버 랜드 투어의 마지막 밤, 프리실라의 생일이어서 스태프들을 제외한 참가자들끼리 짐바브웨 전통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다들 스태프들 욕을 해서 살짝 놀랐다. 겉으로는 스태프들과 굉장히 친해 보였는데 딴생각들을 하고 있었나 보다. 다른 팀에 비해서 식사가 형편없었다는 것과 경비 문제 등이 주된 이유였다.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 너희는 왜 그렇게 불평을 안 하느냐고 물었다. 하긴 우리도 샌드위치는 더 이상 못 먹을 것 같았다. 그래도 불평 거리가 있으면 바로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사소한 것들은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지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이야기 도중에 싸움이 터졌다. 일행 중에 가장 연장자인 리 아저씨와 올가가 아이스박스의 얼음 값을 내는 문제를 가지고 말다툼을 벌였다. 스페인인과 한국인,  일행 중 영어가 가장 취약한 두 사람인데도 싸울 때는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영어는 싸워야 느나 보다. 올가는 그동안 리 아저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영어로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지난번에 네가 차 안에서 내 옷을 던졌다. 트럭 안 아이스박스 안엔 네 물건만 잔뜩 채워 넣고 왜 나한테 얼음 값을 달라고 하느냐.’ 등등.

이때, 생일의 주인공인 프리실라가 던진 한마디.

“저 사람들 겨우 2 풀라(우리 돈 360원) 갖고 싸우고 있어.”

역시 돈이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중요한 거다. 리 아줌마의 중재로 화해하긴 했지만 한국인처럼 스페인 사람도 화끈하다는 걸 보여준 장면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데 리 아줌마가 올가에게 

“그래도 넌 운이 좋은 거야. 넌 겨우 20일 같이 생활했지만 난 그 사람하고 20년을 넘게 살았잖아.” 

이 말에 모두 웃으며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빅토리아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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