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오버 랜드 투어가 끝났다.
올가는 새로운 투어로 탄자니아까지 북쪽으로 가고 다른 멤버들은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우린 텐트 치는 게 너무 힘들어 얼른 아프리카를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금은 탄자니아까지 안 올라간 게 후회되지만 당시로서는 ‘노 모어(no more) 아프리카, 노 모어 샌드위치’라면서 얼른 남미로 도망가고 싶었다. 남미 역시 만만치 않다는 걸 그땐 몰랐다.
외국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30년은 넘은 것 같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면세점 선반조차 많이 비어 있는 이 가난한 나라 공항에서 다른 한국인 일행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우리 가족에겐 앞으로의 긴 여정이 남아있었다.
떠나는 한국 친구들을 보니 따라가고 싶다는 느낌이 왈칵 밀려왔다. 벌써 한국을 떠난 지 3개월이나 됐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한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오자마자 큰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다가 샌드위치에 지친 위를 달래주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식사 준비를 하다 보면 우리나라 음식이 준비하는데 얼마나 번거로운 지 알 수 있다. 부엌을 공용으로 쓰는 곳에선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릇도 많이 사용해야 해서 눈치가 보였다.
서양인들은 그냥 스파게티나 삶아서 먹든지 빵 먹으면 그만인데 우린 밥에 국도 하고 반찬도 해야 했다. 라면이 있긴 하지만 먹겠다는 욕구가 강한 우리 가족은 이것저것 해 먹어야 했다.
다행히 우리가 머문 게스트하우스는 일본 친구들이 많았는데 일본인들은 요리에 관심도 많고 한국음식에 대해서도 잘 알아 눈치 보지 않고 실컷 해 먹을 수 있었다.
일본 여행객들 중에는 한국인 애인이 있었거나 한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등 한국에 친숙한 사람들이 많았다. 남미나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 동양인 배낭 여행자들은 중국인은 아직까지 적고 일본인 아니면 한국인이었다. 동양인이 없는 곳에선 일본인만 봐도 너무 반갑고 한국 음식이 없을 땐 일식집이라도 찾게 되었다.
이곳에서 우리 가족 빼고 유일한 한국인인 수연 씨는 9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남미로 갈 예정이었는데 남미에서 아프리카로 왔다니 더 반가웠다. 여러 가지 남미 정보도 듣고 남미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몇 개 받았다.
책과 함께 다큐멘터리도 우리의 여행 조력자였다. 우리가 가는 지역에 대한 다큐들을 미리 보면 현지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여행 전에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준비해 와서 현지에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연 씨에게 얻은 다큐보다 귀중한 정보는 바로 참기름이었다.
“참기름만 있으면 다른 반찬 없이도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정말 편해요.”
그 후로 우리 배낭엔 참기름이 병째로 자리를 잡았다. 쌀에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까지, 이로써 우린 ‘걸어 다니는 집(walking house?)’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