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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Nov 22. 2022

동산에서

비 예보도 있고, 오늘은 집 근처 동산에 올랐다. 그런데 웬 걸. 생각보다 힘들어서 당황스러웠다. 

 

큰 산을 오를 때와 작은 산을 오를 때의 마음가짐이 달랐다. 얕본 것이다. 급히 가다가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힐 뻔도 했다.  작은 산도 힘들 수 있고 뱀이 살지 말란 법도 없다.


작든 크든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쉽다고 대충 하면 어이없이 실패할 수 있다. 씨름처럼 힘 겨루는 경기에서도 자신의 100%를 쏟지 않고 얕보다가  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 반대로 태산처럼 지나치게 두려워해서 아예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크다고 두려워 말고 작다고 얕보지 않는 마음의 외줄 타기를 잘해야 할 같다.

       

꿈도 이왕이면 크게 꾸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표라면 전략을 세우고 집중력과 잠재력의 영혼까지 모아 덤비기 문이다. 여기도 큰 산이라 여기며 맘을 다잡고 걸음에 신중하니, 호흡 안정되어갔다. 앞서 갔던 들이 하나둘 쉴 때도 천천히 나아갈 수 있었다.


꼭대기의 정자에 도착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강하면서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마른 잎이 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달랑거린다. 아마 오늘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질 것이다. 떨어진  속에서 거름이 되어 뿌리부터 채우다가 나무둥치를 타고 올라가 다시 싱싱한 초록색 이파리로 돋아날 것이다. 저 멀리 비치는 해 사이로 소보루빵 같은 구름보인다. 저기쯤엔가 있을 나의 눈으로 찾으며 깊게 바람을 들이마신다. 아름다운 날이다.       



오르기 적당한 동산처럼 나는 뭐든 적당하다. 일도 공부도 적당히 잘하고 적당히 말주변도 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변호사가 됐음 하셨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잘한다는 건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 고만 고만하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뭘 좋아하지.'

아직 꿈꾸고 있다. 앞으로 40년, 좋아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지금은 가지 끝 잎새처럼 위태로워도 언젠가 작든, 가늘든, 내 나무를 심고 가꾸고 싶다.


잠을 거의 잤는데도, 오늘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 예전에 긴장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불만족한 강의를 한 적이 많았는데, 잠을 잤기 때문이 아니라 형편없는 체력이 문제였던 것 같다.  


공원과 붙어 있는 국궁장에 뒷길이 있었다. 어르신들이 가시기에 졸졸 따라가 본 그곳에는 작고 아름다운 공간이 있었다. 항상 국궁장 앞쪽으로만 다녔는데, 차들이 어찌나 쌩쌩 달리는지 무서워 직전에서 되돌아오곤 했다.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버드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낙엽이 우수수 흩날리며 어디선가 빨강머리앤이 튀어나올 듯한 아담한 나무다리까지 놓인 뒷길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인생도 정면 돌파만이 답이 아닐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포기하지 않고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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