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숲 Dec 11. 2022

예민이와 잔소리쟁이

예민함의 8할은 다이어트, 즉 음식조절에서 비롯되곤 다. 그에 반해 남편은 모든 예민하고 짜증스럽다. 연중 364일 죽상을 하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저렇게 날씬한데 뭐가 불만인 거야. 대체.'

철저히 내 관점이다. 


남편은 오늘 시엄마, 형과 통화한 후로 먹구름 낀 듯 어둡다. 시엄마는 요즘 부쩍 체력좋으신지 12월 초에는 우리 집에서 보고, 크리스마스는 아주버님 댁에서 만나신정엔 펜션 잡아 여수로 놀러 가자고 한다. 남편이 한 달에 세 번 보는 건  어렵다고 하니까 시엄마가 아주버님을 호출했나 보다. 그리고 아주버님이 남편에게 전화해서 '냐. 지난번에도 너 때문에 가족여행 못 가지 않았냐. 자꾸 너 때문에 못 만난다.'는 식으로 몰아붙인 모양이다.


남편이 시엄마와 형이랑 통화했다고 말하길래

"뭐라고 하는데?" 물었더니

"뭘 뭐라 그래!" 대뜸 무뚝뚝하게  말한다.

이후로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게  짜증을 내며 띄엄띄엄 단답형으로 말한다.

"남편, 통화한 내용을 차근차근 얘기해주면 되지. 왜 자꾸 짜증을 내~그럴 거면 통화했다는 말을 하지 말던가."

그랬더니 자기가 언제 짜증을 냈냐. 네가 먼저 그러지 않았냐며 고렷돌림노래를 몇 소절 부른 후에야 얘기를 시작한다.


남편이 시엄마한테 몸이 아프고 팀원이 출장 가서 연차 낼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통하지 않았고, 바로 형한테 전화가 와서 또 상황 설명을 다 했는데도 무조건 내려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지금 가장 기분 나쁜 게 뭐냐고 물으니, 강압적으로 말하는 것과 형이 자기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시엄마를 통하는 게 불쾌하단다.


"그럼 그렇게 형한테 말하면 되지."

" 내가 말한 적 없는 줄 알아? 쌍욕만 먹었어. 말이 안 통해. 그냥 가야지 뭐."

"쌍욕을  얘기해야지. 아주버님 말투가 원래 그지 같다 생각하고, 화내지 말고 얘기해. 아주버님 같은 성격은 안된다고만 할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것 같아. 신정에는 못 내려가도 주말이나 구정엔   있다고. 즐겁자고 만나는 건데   싸우고 그래. "


남편은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다. 형이나 시엄마의 요구에 한 번도 거절하지 못했다. 암수술도 시엄마 걱정할까 봐 숨긴 채, 시엄마를 모시고 제천과 서울의 병원 계속 오가며 남몰래 힘겨워했다. 시엄마는 충분히 혼자 다닐 수 있음에도 언제나 남편이 대동하길 원했다.


언니가 다니는 회사 여직원 중에 술자리에 안 간다는 말을 못 해서 몇 번 억지로 끌려나갔다가 상사 부인한테 오해 받아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러고도 거절을 못하는 걸 두고 언니는 평생 못 고치는 병이라고 했다. 그 병, 나도 있었다. 아마 지금도 남아 있을 것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표정이 싸해질까 분위기 깰까  싫어하게 될까 두려워 거절을 삼키는 .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내 경우에 체력이 떨어지면 온 세상이 적으로 느껴지더라.  나한테 피해 주는  같고, 너무 짜증이 나고, 나는 그렇더라. 그러니까 일단 남편 몸부터 살피고 다른 사람을 생각했으면 좋겠어.


내가 기상청콜센터에 있을 때 진상이  많았거든. 그중에 한 명이 전화해서 비 언제 오냐고 묻는 거야. 3시에서 6시 사이에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면, 장난하냐고, 정확한 시간을 말하라고 욕을 해. 그 시간에 비가 안 오면 왜 안 오냐고 지랄하려고.


또, 비가 시작되면 몇 시에 그치냐고 전화해. 6시에서 9시 사이에 그칠 예정이라고 하면 몇 시인지 딱 말하래. 몇 번  실랑이하다가 말하면 겨우 끊었다가, 그 시각 땡하면 전화하는 거야. 그냥 욕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매번 상처받고 술로 풀고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름의  매뉴얼을 정했어. 일단, 무조건 예보대로 말하는 거야. 3시에 옵니다. 6시에 그칩니다. 요렇게. 욕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수화기를 멀찍이 떨어뜨리거나 엎어놨다가 가끔 들어서 네~죄송합니다~소리를 AI처럼 내뱉는 거지. 그러니까 감정도 안 상하고 오히려 웃음이 나오더라고. 내가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통제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 남편도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소신 있게 여유 있게 대처했으면 좋겠어. 


내가 보기에 지금 남편은 남편 인생에 주인공이 아닌 것 같아. 남의 말에 매번 휘둘리고 매일 우울해해. 남편 인생의 보조석에 앉지 말고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딱 잡아. 누가 공격하면 속수무책 당하지 말고 무시하기도 하고, 맞받아치기도 하면서 핸들을 꺾으란 말이야. 영향을 최소한으로 받고 살았으면 좋겠어. 어렵겠지만 말이야. 나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


남편은 길고 긴 잔소리가 끝나 안도하는 듯했다. 아마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의 말 못 하고 거절 못하는 병은, 가장 가까운 나에게 짜증과 예민함으로 돌아온다. 남편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동산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