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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ul 04. 2022

다이어트 인생

인생 최대 난제

중학교 때까지는 별다른 굴곡이나 고민이 없었다. 인문계를 원했지만 담임선생님이 뜯어말리셔 결국 실업계로 진학했다. 공부를 안 해도, 교복만 똑바로 착용하면 학교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수업시간 내리 잠만 자도 아무 깨우지 않았다. 


한 번은  쉬는 시간에 복도를 지나시던 다른 반 선생님이 열린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엎드려 있는 내 머리통을  치시길래 일어나니,  

"너구나.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애가. 너 엄청 유명해."

실업계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를 포기했던 거다. 그렇게 투명인간처럼 지각을 밥 먹듯 하고 허락도 받지 않고 쓱 담을 넘어 집에 갔다. 직무유기였다.


내 인생 최대 난제인 다이어트의 기원은,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신나게 매점을 드나들며 작아진 교복을 두 번이나 바꿔 입었다. 품은 맞는데, 치마는 발목까지 와서 네 번 이상 접어 입었고,  친구들이 “쟤 . 마이(재킷)를 땅에 질질 끌고 다닌다.”라고 놀려 댔다.

그래도 교우관계도 좋고 행복한 돼지라 크게 다이어트의 필요를 못 느꼈다.


친구 따라 간 농구장에서 그 애를 봤다. 겨우 160 이 넘는 작은 키에도 기가 하나도 안 죽고  휩쓸고 다니는 걸 보고 한눈에 반했다. 이후 별의별 다이어트를 다해봤다.

한 달 동안 수박만 먹기, 토할 때까지 헉헉 대며 사선을 넘나드는 에어로빅, 운동장 달리기, 한여름에 등산하기, 걸어서 등하교하기 등등.


다이어트 성공은 난생 처음으로 관심과 호의를 받으며 결핍됐던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당시 맘에 드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겨 쪽지에 써서 내는 ‘학력고사팅’이 유행했는데, 인기 아이돌 멤버처럼 생긴, 여자들이 죄다 쳐다보던 남자애도 1순위로 내 이름을 써내서 짜릿했다.

그런데 잠깐만, 겨우 몇 키로 뺐다고 대우가 달라진다고? 살이 찌나 빠지나 나는 그냥 나인데?


강사로 일할 때 제자였던 아주머니가 아들을 소개해주셨다. 다 별론데 거들먹거리는 게 젤 맘에 안 들었다. 어떻게 거절하나 고민하면서 학원에 갔는데 굉장히 미안해 하시면서, “아들이 선생님 너무 뚱뚱해서 싫대. 미안해서 어쩌지?”  


또 한 번은 엄마 친구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분은 엄마를 보며

“작은 딸 돼지라며? 그 정도는 아닌데?”

외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였다. 이대로의 나를 부정하는 것 같아 점점 작아졌고,

분명 누가 봐도 뚱뚱한데 자신감과 매력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열등감에 시달렸다.




 

올해만 여러 번 다이어트를 시도다. 태만했던 학창 시절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인생의 중요한 길목마다  발목을 잡듯, 힘겹게 눌러 담은 식욕은 몇 배로 커져 돌아와 나를 사납게 공격했다.  

'다이어트'라는 거대한 바위 앞에 서서 가진 계란을 다 던져 봤지만 소용없음을 깨달은 사람처럼 이제 더 이상 던질 계란도, 기력다.


고등학교 때, 수박만 먹고 에어로빅하며 감량한 어느 날. 엄마가 내 손을 보시더니

 “왜 이렇게 말랐냐. 손이 아주 갈가시 같네.”

하고 말씀하셨다. 갈가시의 뜻은 정확히 몰랐지만, 걱정스럽고 따뜻한 어조에 처음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가슴이 뻐근다.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은 아이가 내 안에 살고 있다. 눈을 감고 시절로 돌아가 엄마에게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은,

살쪄도 괜찮아.  찌면 어때.

지금 딱 보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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