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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ul 05. 2022

'그 해 우리는' 드라마를 보고.

흔한 드라마가 불현듯 과거를 소환할 때가 있다.

-사진 출처 SBS 드라마 '그 해 우리는'-


‘그 해 우리는’의 여주는 속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져야 했던 이유는 너와 나의 현실이 같지 않아서, 사실 내 현실이 딱해서, 지금은 내 현실 하나 감당하기도 벅차서, 더 있다간 내 지독한 열등감을 너한테 들킬 것만 같아서.’


여주는 겉으론 당당하지만 가난을 들킬까 봐 불안하고 초조하다. 남주의 세계에는 가난이 없으니 가난을 모른다. 그래서 해맑게 ‘그림은 취미로 하며 낮에는 햇볕 쐬고 누워있고, 밤에는 달빛 쐬며 누워있는 삶’을 희망한다. 그의 무기력과 누워있음에도 이유는 있다. 


여주는 너무 다른 세상을 사는 괴리감과 열등감, 감당 못할 현실에 헤어짐을 선택한다. 오랜만에 재회한 이들의 처지는 어찌 된 일인지 저만큼 더 벌어져 있다. 희망 없던 남주는 독기를 장착하고 이를 악물고 일에만 매달려 유명해지고 더 부자가 되었다. 똑같이 이를 악물고 악바리처럼 열심히 살아왔지만 여주는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꿈꿨던 작은 성공 정도는 이룬 것일까.




가난 속에서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햇빛이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희망도 미래도 없을 거라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긍정의 힘? 이런 걸 강제로 주입해보지만 약발은 금세 떨어진다.

성공은,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죽도록 노력하거나가 아니다. 둘 다 있어야 하고 여기에 재력과 천운도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젠가부터 무감각해졌다. 무감각은 고통스러운 순간에 최적화된 갑옷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삼한사온처럼 춥다가도 어느새 따뜻해지는 것. 나는 지금의 가난과는 먼 편안하고 안락한 보통의 생활에도 무감각하다. 봄이 왔는데도 겨울옷을 계속 걸치고 있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면, 여주는 남주가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유명해져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일할 때 영혼이 가득 담긴 생기 있는 눈빛을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여주는 아주 우아하다. 성공한 너를 부러워하지 않고 성공하지 못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가난을 모르는 너는, 구질구질한 나를 금방 잊었다. 가난을 벗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나의 스토리는 사실 이게 다다. 

이미 읽은 페이지는 접어두고, 이제부턴 또 다른 설렘과 생기를 찾아서 한 걸음씩 걸어가는 아주 소소한 이야기가 쓰이면 좋겠다. 그리운 건 그 시절도, 사랑도 아니고 그 속에서 반짝거렸던 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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