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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ul 08. 2022

wake up!

꿈에서 내가 죽었다

간밤의 꿈이 선명하다. 고등학교 교실에 있었는데, 출석부의 내 이름 앞에 고인(故人)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내가 죽은 사람이었다. 꿈은 원래 논리가 없어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죽을 줄은 몰랐다. 모든 학생들이 수능 공부로 정신없이 바빴다. 꿈에서도 대학을 한번 갔다 와서 다시 진학할 필요가 없었지만 덩달아 공부에 열중했다.

꿈속 부모는 부유해 보였다. 그러나 냉장고의 음식은 썩어갔다. 버릴 것들만 가득했다. 마치 오래 묵혀두고 꺼내보고 또 꺼내보던 내 머릿속 기억들처럼 부패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아름답지도 않은 기억들을 붙잡고 왜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학교 행정실로 갔다. 담당 선생님이 컴퓨터로 조회하시다가 이전 성적을 보고 자세를 고쳐 앉아 감탄을 하셨다. “와 진짜 공부 열심히 하셨네요.”

덤덤히 굴었지만 못내 자랑스러웠다. 모르는 이의 칭찬 한마디에 여기 온 목적도 잊고 바보같이 활짝 웃었다.

바보같이, 아직도 과거 사로잡혀 현실을 꿈인 듯 몽롱하게 살고 있다. 아니면 꿈속의 내가 진짜고,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접지몽이다.  

  



꼭 죽어야 다시 태어나는 건 아닐 것이다. 편입했익산의 대학을 다시 찾았다. 치열했던 기억들을 되짚어보고 다시 태어나듯 다르게 살고 싶은 바람을 안고서.

이곳에서, 관용표현 그대로 춥고 배고팠다. 전기장판에 의지해서 두 번의 겨울을 났고, 20분을 뛰어 친구 자취방에 가서 씻었다. 화장실 앞에 묶여 있던 사나운 개새끼 때문에 근처 산부인과 화장실을 환자인 척 몰래 이용했다. 2시간씩 자며 평생 써야 할 체력을 가불 해서 써버리고, 인간의 존엄과 품격(?)은 모래성처럼 흩어졌다. 결국 꿈꿨던 임용고시 합격자 명단 플래카드에 이름을 올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 참 열심히 살았다.

“네가 임춘애냐?”라는 농담을 자주 들었다. 임춘애는 라면만 먹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알려진 선수다. 어느 날, 라면 말고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한 달 치 용돈을 아껴 닭을 바로 잡아 튀겨주는 에서 반 마리를 샀다. 신이 나서 껑충껑충 뛰어 집에 도착했는데, 기척을 들은 주인 할머니가 안채로 건너오라고 하셨다. 할머니 말인 즉, 계량기가 하나니 수도세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주변머리 없는 성격이라 꼼짝없이 잡혔다. 팔순에 가까운 욕심 많은 주인 할머니는 십 원도 손해 보기 싫어서 몇 번이고 계산을 반복했다. 방에 돌아가니 치킨이 차갑게 식어 씹을 때마다 이에 찌걱찌걱 엉겨 붙는 기름 맛에 비위가 상했다. 마지막 조각을 입에 밀어 넣으면서 왈칵 눈물이 났다.

     


집은 따뜻하고 치킨도 질리도록 먹는다. 무한한 자유가 이번 생에 처음이라 어쩔 줄을 모르겠다. 종일 누워 TV 리모컨을 하도 눌러서 손목 인대가 늘어날 지경이다. 그렇게 시간을 죽였고 나도 죽어 있었다.


꿈에서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정정하지 못했다. 갑자기 집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비가 세기 시작했다. 차가운 빗줄기가 폭포처럼 얼굴로 떨어졌다. 또 한번 장면이 바뀌고 지금 강의하는 반 학생들이 나타나 웃으며 얼굴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선생님 커피 드실래요?"

눈이 번쩍 떠졌다. Wak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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