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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un 30. 2022

아빠 딸이니까

장의사는 최고의 예를 갖춰 모시겠다며 깊숙이 고개를 숙인 후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검어진 얼굴에 흰 분칠도 했다. 그리고는 삼베로 몸을 덮어 꽁꽁 여미었다. 마지막 천을 덮기 전, 아빠의 얼굴을 처음 제대로 본 것 같다. 생전 얼굴과 달라서 놀랐다. 언니는 자기는 돌연변이라고, 이런 집에 태어날 사람이 아닌데 잘 못 태어나 고생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런데 아빠의 마지막 얼굴이 언니와 많이 닮아 있었다.      


아빠는 암이라는 말을 처음 전할 때부터 미안해하셨다.  수술 후 깨어나시길 기다렸다 들어갔는데, 몸도 못 가누면서 휘적휘적 일어나려 해서 언니가 "아빠. 왜? 뭐 찾아?" 물으, 서랍에서 먹을 걸 꺼내서 나한테 주라고 하면서 이 것 밖에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다.


마지막을 앞두고는 해  준 것도 없고, 남겨 줄 것도 없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셨다. ‘괜찮으니, 그런 말씀 마세요.’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임종을 앞둔 어느 날, 요양원에 갔다가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가지 말라고 나는 아무도 없다고 아이처럼 서럽게 우셨다.  

엄마는 장례식에 오지 않으셨고 언니와 둘이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손님을 치르고 납골당에 모신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야 목놓아 울었다.

평소엔 한 달에 한 번도 전화하지 않던 내가, 돌아가시고는 받지 않는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으니 다음에 다시 걸어주십시오.’ 소리가 들려도 자꾸만 걸어보았다. 미안한 마음은 이제 내 몫이 되었다.




아빠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네 잎 클로버를 따러 산으로 들로 다니셨다. 네 잎 클로버를 정성스럽게 말려서 코팅한 후 다락방 가득 모으시고는 복권을 사셨다.

밤이면 밥상을 펴고 단정히 앉아, 오늘은 한자, 내일은 영어, 모레는 수학을 공부하셨다. 때로는 주역 책을 정독하며 사주팔자를 공부하셨다. 쉬지 않고 자기 계발을 하셨고 주변에서는 칭찬에 입이 말랐지만, 정작 가정경제는 개발하지 못하셨다


엄마는 내 기질이 아빠와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더 돈 되는 일을 해야지. 뜬구름 같은 꿈 좇지 말고 땅에 발 붙이고 살아야지. 다잡았지만 매일 실패하는 내가 미웠다.     


떨치고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계속 코피가 나는 걸 본 분식집 아주머니가 안쓰러워하며 홍삼을 권했지만 나와는 먼 얘기였다. 안정적인 직업을 얻자는 일념으로 경주마처럼 공부하다가 디스크로 척추가 무너져 문턱 앞에서 좌초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새벽잠을 뿌리치는 일은 날마다 도전이었고 귀갓길엔 술집 앞을 기웃거렸다. 추운 집에서 몸이 잔뜩 굳은 채 알람 소리에 눈 뜨는 아침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손으로 잡아 일으켜 바닥에 내려놓으며 게으른 나를 다그쳤다. 나는 다르게 살 거라고 이를 악물었다.   


결혼하고도 뚜렷한 목표 없이 언젠가는 써먹겠지 싶어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게으르고 쓸모없는 나로 돌아갈까 두려웠다.

아빠도 긴 인생,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지 하고 마냥 잘하는 걸 찾아 쉼 없이 노력했고, 가끔 설레는 마음으로 복권을 사며 빛나는 상상도 하셨을 거다.


그렇게 살다 문득 고개를 드니, 너무 멀리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막막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세상 밖으로 튕겨나가 빙빙 겉돌고 있었구나.

진짜 내 삶은 없었구나. 그랬을 것 같다.

후회와 허망함을 말할 이 없었을 거고 결국 마음에 병이 든 것 같다. 거기에 미안한 마음까지 꽉 얹혀버린 거다.     




이제는 만 보면 두통이 올라오고 멍한 상태에서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아빠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땐, 잠이 더 오지 않았다. 아빠는 정말 공부를 좋아했을까?


아빠의 인생은 짧았다. 성격은 나와, 마지막 모습은 언니와 닮았다. 딸이니 당연히 아빠가 깃들어 있을 것이다. 생전에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표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몸과 마음에 깃들은 아빠를, 그리고 이대로의 나를, 이제

벗어나려고  애쓰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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