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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un 20. 2022

깊은 슬픔_신경숙 소설

아무리 슬픈 사랑의 상처를 가진 사람도 주인공 은서를 당해내긴 어렵다. 슬픔에는 더 큰 슬픔을 부어야 흘러넘쳐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을 지나며 이만큼이나 이별의 슬픔을 희석시켜준 책은 없었다. 서문에도 있듯 사랑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든 이에게 바치는 책이다.





'깊은 슬픔'은 떠난 것, 내 것이 아닌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갈망하는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사람은 원래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에 맘을 뺏기지 않는다. 손에 쥔 건 단박에 초라해 보인다. 대상이 사람이든 꿈이든 일이든 내게 미소 짓지 않을 때 강하게 끌리고 후광이 비치며 갈증이 생긴다. 필연적으로 슬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등만 보여줄 뿐, 영원히 날 향해 돌아보지 않는다. 조금만 노력하면 닿을 거라는 착각도 든다. 그 기대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이미 끝나버린, 놓쳐버린, 무존재의, 가질 수 없는 것들만 빛나 보이고 그 빛을 쫓다 보면 불나방처럼 결국 타 죽는 것이다.



라디오 방송 작가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해내는지 의아할 정도로 조용하고 야망 따위 없는 듯한 은서는 사실 욕망의 노예였다. 세가 자신을 사랑할 땐, 등 돌린 완의 사랑을  갈구하고, 세가 등 돌린 후에야 다시 붙잡으려 애를 쓴다. 애초에 완에 대한 사랑도 그가 떠날 수 있다는 불안을 자각한 순간에 시작되었다. 언제고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랑,  이미 식어버린 사랑을 계속해서 바랐다. 은서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었음깨닫고 자신을 놓아버린다.


이럴 거면 다음 생엔
나 태어나지 말기를
- '깊은슬픔'중에서 -

어쩌면 그리스 신화에서 영원히 죽지도 않고 계속 돌을 산꼭대기로 올려놔야 하는 시지프스의 운명과도

맞닿아있다. 작가로부터 깊은 슬픔에 갇혀서 허무한 행동을 반복하도록 부여된 은서는 벽을 깨지 못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순간에도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가는 사람의 마음을 한 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지금 목숨 거는 그 사랑도 나를 잠시 스쳐가중일 뿐이라고. 회오리처럼 나를 돌고 돌다 지나쳐 흘러간 것들에 인생을 걸지 말라고 위로하고 싶다.

언젠가,  깊은 슬픔 속에서 이 악물고 빠져나와 운명을 깨부수거나, 가볍게 툭 흘려보낼 줄 아는 완전히 다른 그녀, 은서들을 창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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