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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May 23. 2023

Wake up!

목이 심하게 부어 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선생님 말로는 부어서 찢어졌다고 합니다. 답답해서 조금 연 창틈으로 들어온  공기가 밤새 목에 침투한 것 같습니다.

아팠지만 동아리모임차 저녁에 zoom에 접속했습니다. 올해 처음 보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이 년 남짓 됐는데 오랜 친구처럼 편안합니다. 안부를 묻고 되지도 않게 서로 살 빠졌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칭찬합니다. 한참 수다를 떨다 다음 오프라인 모임 약속을 잡았습니다. 마주 볼 생각에 벌써 기대로 부풉니다.


생리통처럼 심한 몸살에 착 가라앉아 기운이 하나도 없었는데, 반가운 이들을 보고 웃음소리를 들으니 편안해지고 기분이 업되고 몸은 가벼워졌습니다. 앓은 지 하루 만에 다 나은 것 같습니다.


결혼 전까지 쉬어본 적이 없어 백수를 향한 한과 갈망이 컸습니다. 그러나 세웠던 버킷들은 이런저런 변수들로 버려졌고 변수가 사라진 후에는 잊혔습니다. 아직도 나를 찾지 못했습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체력 또한 올리지 못했습니다. 사실 모든 상황이 쉬기 전보다 안 좋습니다. 다만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성취라면 유일한 성취입니다. 모임 쌤들은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소소한 성취를 이루며 규칙적인 생활로 자신에게 엄격한 이들에게 보이는 단정함과,  바쁜 이들에게 엿보이는 생기가 넘칩니다. 바쁜 삶에 질렸었는데, 이제 바쁘고 싶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감기나 바이러스보다 기분 나쁜 만남따라붙어 온 부정적인 기운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나를 아프게 한 건 아닐까, 무방비상태로 카운터펀치를 맞은 것은 아닐까 하고요. 누군가 나를 때리려 하면 손을 들어 나를 보호하거나 피할 겁니다. 그런데 누군가 내 영혼을 내려치려 할 땐 방어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 나아가야겠지요.


낮잠을 오래 자서 나은 걸까요? 감기가 걸렸는지 모르듯  잘 모르겠습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방 침대에 둘이 나란히 앉아 일출을 보는 꿈을 꿨습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일출처럼 밝고 장엄하고 희망찬 기운이 방안에 감돌고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해를 눈에 실컷 담고 피곤해진 나는 침대에 반듯이 눕습니다.

꿈속에서 다시 꿈을 꿉니다. 꿈속 꿈의 나는 침대에 엎드려서 철없는 아이마냥 아프다며 인상 쓰고 이유 없이 짜증 부리며  멍한 눈으로 어둠 속에 있습니다.


해를 보고 벅찬 가슴을 안고 잠든 내가 나인지,  꿈속 꿈의 무기력한 내가 나인지 모르겠습니다. 약기운에 몽롱하고 미열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규칙 하나 없는 나태함의 끝. 굳이 벗어나고 싶지 않지만, 진짜 원하는 삶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별로였던 나의 백수생활은 꿈에서 깨는 것으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Wak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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