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나는 빛났었나.

by 바다숲

나는 솔로 28기 영숙님이 오열하며 하셨던 말씀 중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빛났었나?" 생소한 표현이다. 나이를 고려한다면 더더구나,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질감이 느껴지면서도 그분의 순수함과 식지않은 낭만이 엿보여서 좋았다.


이십 대엔 공부와 가난에 찌들어있었다. 대학교 때 가장 값싸고 양이 증식하는 미역을 사다가 항상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김치는 사치였다. 짜디짜게 간한 미역국에 호로록 밥 말아먹는 게 그래도 라면보다는 건강식이었다. 배고픈 어느 날 냉장고를 여니, 오래되어 상한 미역국 냄비 하나가 덩그렇게 놓여있더라는 주변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


도서관에 오는 모두를 오랜 벗처럼 환대하며, 빛나는 웃음을 지어 보일 거라던 나의 다짐은 어디로 갔을까. 어릴 적부터 되고 싶던 사서가 되었는데 지금 탈출각만 재고 있다. 그래도 2년 꼬박 버텼으니 자랑스럽다고 해야 할까. ENFP인 나는 밝고 씩씩하고 쎄보이지만 실제론 잘 위축되고 아쉬운 소릴 못한다. 일이 너무 많아 우울 해질 지경이 돼도 도와달라는 말을 차마 못 하고 주어진 일은 무조건 내선에서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힘들다고 말한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전임자와의 비교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상호대차 가방이 두카트씩 몇백 권이 들어오고 , 가방하나 까면 책 찾아달라, 회원가입해 달라, DVD 틀어달라, CD 달라, 가방하나 까면 전화 오고, 가방하나 까면 대출반납이 있다. 상호대차책 백몇권을 서가에서 찾아 전산처리후 가방에 싸서 보내고 사람들이 빠지면, 그때부터 난리브루스가 난 서가를 장갑 끼고 미친 듯이 정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면서 바라는 건 딱 하나,


'도서관에 이용자가 없게 해 주세요.'


이것이 사서로서의 나의 간절한 기도이며, 부끄러움이다. 40대 후반인 나는 지금도 찌들어있고, 별은커녕 반딧불만큼도 빛나지 않다.


아무리 힘들다고 토로해도 그 입장에서 겪어보지 않으면 상대는 모른다. 안 맞을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나는 ENFP인 데다가 "예술형"인데, 도서관 직원들은 대부분 ISTJ 즉 내향현실사고판단형이며 직업심리검사상 "관습형"들이다. (꼭 ISTJ 가 아니더라도 I는 확실하다).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하루종일 조용히 하고 조용히 시켜야한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 적성에 맞는 직업상담사를 떠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니, 에너지가 몇 배로 투입돼도 일이 될까 말까이다. 끝까지 자문하며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그저 꿈이라는 로망에 젖어 경솔하게 직업을 선택한 결과다.


버티고 그냥 하는 게, 최고의 가치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버텨볼까. 도전해본 걸로 만족할까. 이번만큼은 끝까지 생각해 보자. 그만두는 건 쉬운 일이고 버티는 건 좀더 어려운 일이니까. 물론 안 맞아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계속 유보하다가는 수년 후 결정권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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