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숲 Aug 03. 2022

책을 읽는 이유

책은 지식과 정보를 주고 재미와 감동, 위로와 용기를 준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책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TV, 인터넷, 유튜브에도 정보, 재미, 감동, 위로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TV를 보고 오래 생각에 잠기거나, 통찰과 울림을 얻은 적이 있는지.

물론 'I feel pretty' 같은 영화를 보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라는 메시지와 감동을 주기도 한다. 나의 아저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드라마 역시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소름 돋는 삶의 통찰들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장면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잔상은 오래 남지 않으며, 손은 홀린 듯이 다음 채널로 리모컨을 돌리고 있다. 자극적인 영상을 클릭하다 보니 정신없는 알고리즘 안에 갇혀, 곱씹고 되짚어 보고 가슴에 새길 여유는 어쩐지 잘 생기지 않는다.



책장을 잠시 덮고 눈을 감으면, 시간이 느려지다가 멈추고 봄날 아지랑이처럼 온갖 생각들이 서서히 피어오른다.

신중히 고르고 고른 책을 펴는 순간만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온갖 피곤한 자극들에서 벗어난다. 시끄럽던 세상은 비로소 조용해진다. 좋아하는 소설을 읽을 때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주변에 아무 소음이 들리지 않고 붕 떠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책은, TV라는 이름의 바보상자에 갇혔던 나를 넓은 세상 위로 꺼내 올려주고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전두엽에 저장된 오래되어 없어진 줄 알았지만 살아 숨 쉬던 기억과 잊고 살던 감각을 천천히 끄집어내 준다.


어린 시절무모함과 무한대의 꿈을 지나 젊은 날의 안타까운 뜀박질과 중년의 내려놓음까지.


가본 적 없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모험가들을 보며, 꿈을 품기도 하고, 한낱 보잘것없던 주인공이 부딪쳐 깨지며 레벨 업하는 성장담에 뭉클해지기도 한다.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선조들의 신념에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하고, 한 때 미쳤던 삼국지 속 지략들에 혀를 내두르고 감탄하며, 우리 일도 아닌데 유비와 공명의 촉나라가 삼국 통일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잊었다 믿었던 사랑을 기습적으로 소환해서 심장이 저릿하게, 종일 심란해서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게 만들기도 하고, 저 불행이 내 것이 아님에 안도하기도, 사는 게 다 똑같구나  거 없구나 안심하기도 한다. 


책 속 인생 선배들이 숱하게 말하는 건 꼭 들어야 하는데, 예를 들면, 나를 미워하거나 구박하지 말고 남에게 하듯 나에게도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마흔이 넘어도 체득은  어렵다.


나는 내평소 TV에서 듣거나 본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 하는 앵무새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경험이라는 여과지를 거친 후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경험의 폭이 확장되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를 실제 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아플 때는 신경숙 소설 깊은 슬픔을 읽고, 휴가처럼 편안할 땐 한수희의 에세이를, 고여 있을 땐 유영만의 용기를 꺼내 아껴 읽는다.

같은 책을 읽고도 수천수만 사람들의 생각이 저마다 다른 것과 '내 생각'이라는 것이 생기는 게 좋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의 내가  마음에 든다.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벼룩과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