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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ul 28. 2022

벼룩과 나

나에겐 ‘작심 한 달의 법칙’이 있다. 그렇게만 계속 하면 건강해지고, 어쩜 작가도 되고 꿈꾸는 대로 뭐든지 될 것 같다. 주먹 꽉 움켜쥐고 어깨가 딱딱하게 뭉칠지언정, 배수의 진을 치고 노력하는 기간이다. 최후의 격전을 앞둔 장군처럼 비장한 각오로 임한다.

한 달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신생아처럼 늘어지게 자던 내가 일곱 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죽치고 앉아 하루 종일 보던 내가 중간에 끄는 결단력이 생긴다. 값비싼 뷔페에 가서도 본전 생각 딱 접고 극강의 자제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온다. 지인들도 너는 볼 때마다 다른 사람 같다 어느 때는 자신감이 하늘 너머 우주로 뻗어나가고 또 어느 때는 지하 10층까지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고 한다.

 이제 좀 뭔가 돼가는 것 같다. 이렇게만 하면 될 것 같다 하는 순간, 마법이 풀린 재투성이 신데렐라처 원래대로 돌아간다. 죽도록 노력했던 날들이 오래 전 꿈인 듯 아득하게 느껴지고 신기루 같이 사라진다.



 ‘학습된 무기력’ 실험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있다. 원래 벼룩은 자기 몸의 100배 이상을 점프하도록 창조되었다고 한다. 작은 유리병 속에 넣으면 바로 뛰어올라 나갈 수 있다. 그러다 유리뚜껑을 닫으면 점프하다 부딪힌다. 나중에 뚜껑을 제거해도 뚜껑 아래까지만 뛰어오르고 병을 나갈 수 있는 원래의 점프 능력은 발휘하지 못한다.


벼룩 같은 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아침 운동을 하루 쉰 눈만 뜨면 귀를 쫑긋 세웠다. 빗소리가 들리면 안심을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비가 계속 내려준 덕분에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한번 운동을 쉬니 다리를 누가 본드로 붙인 것처럼 가기 싫어졌다.

일정이 있는 날엔 에너지를 비축하느라,  일정이 없어도 미루던 일들을 하느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계속 시간이 흘러갔다.


오늘 아침엔 컨디션도 좋고, 날씨도 좋았다. 가기 싫어 댄 핑계는 늦잠을 잔 것이었다. 어차피 오늘은 망했네, 하고 다시 벌렁 소파에 누웠다. 고개를 치켜드는 죄책감을 잠재우고자 먹지도 않는 아침을 잔뜩 챙겨먹었다. 배는 벼룩이 아니고 올챙이 같다. 더는 기분 좋은 척할 수가 없다.       



내가 그은 한계선, 유리뚜껑에 막혔다. 이 정도면 겠지, 더는 힘들겠지 하는 순간, 쥐었던 주먹은 느슨해진다. 탄성 좋은 스프링처럼 길쭉했던 나는 벼룩보다도 작아져서 바닥을 치고 있다. 그동안의 노력들은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이 되었다. 벼룩이 유리뚜껑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유리병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리병  속, 벼룩은 자신의 능력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머리를 세게 부딪쳤고 두려움이 생겼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몇 번 더 어올랐지거듭 좌절했고 두려움은 무기력으로 대체되었다.

언젠가 머리 위 뚜껑이 사라진 것을 눈치 챌 수 있을까. 병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는 자신의 능력을 깨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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