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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Aug 29. 2022

외국인복지센터에서 마지막 수업


외국인복지센터에서 강의하는 반 학생들은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8명이었는데 오늘은 4명이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모두 중국에서 온 친구들이고 어느 정도는 한국어를 알아듣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을 '중도입국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자발적으로 온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올 수밖에 없던 친구들이다. 이전 나라에서 취득한 학력을 인정받아야만 한국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데,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본인 또는 부모가 직접 그 나라에 가서 신청을 하거나 대행업체를 통하는데 2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환승정거장처럼 지나쳐야 할 이곳, 외국인복지센터 계속 머무르는 그 심정은 오죽할까. 계속된 대기 상태에 지친 대다 밤낮으로 알바를 하는 이들의 출석이 양호하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다.




올해 마지막 수업이다.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까. 어떤 이야기가 이 아이들의 심중에 박혀서 진로 도움이 될까. 오래 고민하고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부담을 많이 가져서인지 오늘 수업이 끝나면 뭉쳤던 어깨가 절로 풀릴 것만 같다.

최근 강사일에 대한 회의와 피로감이 더해져 이번 강의를 마지막으로 접어야생각하고 있던 터라 더 복잡한 심경이었다.


컴컴한 교실에 들어가 불을 켜고 노트북을 펼치고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일등으로 온 지혁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오늘도 무반응이다. 흔한 사춘기라서가 아니라, 어릴 때 부모님의 학대로 말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래도 낯이 좀 익었다고 수업이 시작되면 눈도 마주쳐 주고, 특히 BTS 얘기가 나오면 눈빛이 반짝, 거린다. 가끔 손뼉 치는 시늉을 하듯 양손의 다섯 손가락 끝을 맞닿게 살짝 두드려 주기도 한다. 기특하다.


두 번째로 도착한 정이와 반갑게 인사했다. 정이는 한국에 온 지 두 달 밖에 안됐는데 반에서 한국말을 가장 잘해서 신기한 친구다. 소설가가 꿈이라는 정이는 열네 살인데도 고급스러운 어휘를 사용하고 똑똑하며 퍽 어른스럽다. 소설가가 될 자질이 충분해 보인다. 정이에게 물었다.

"너는 성격이 내향적인 것 같아. 외향적인  같아?"

"친한 친구들하고 있을 땐 외향적이고요. 안 친한 사람하고 있을 땐 내향적이에요."

우문현답이다. 이미 소설도 많이 써놨다고 해서 전자 출판 사이트를 알려주고 나중에 너의 책을 꼭 읽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노랑머리로 색한 유미와 반장인 준수가 연달아 들어왔다. 지난 시간에 다룬 '흥미'를 상기시키기 위해 좋아하는  혹은 좋았던 일을 물어보았다. 유미는 미용실에 색하러 갔는데 잘생긴 남자 미용사가 있어 좋았다고 답했다. 한국말을 잘하지는 않지만 헤어에 관심이 많아 미용사 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꽤 붙기 어려운 시험이라 녹록지 않아 보인다. 샛노랑 머리를 예쁘게 풀고 쉬는 시간마다 미용사 필기 문제집을 꺼내 열심히 푼다


유미의 답변에 물개 박수를 치며 격하게 공감해준 후, 다른 친구들은 말이 없어 질문을 바꿔봤다.

"오늘이 인생에서 마지막 날이라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뭐야?"

준수가 말했다.

"가족들과 왕게를 먹고 싶어요."

"왕게? 와~좋다. 나도 그러고 싶다."

반응을 보여준 게 감사했고 웃으면서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잊고 있던 가깝고도 소소한 행복을 상기시켜 준다. 준수는 낯도 안 가리고 항상 반겨준다. 한국말이 서툰 친구 옆에 앉아 통역을 해주고 중간에 퀴즈게임에도 제일 활발하게 참여해서 수업 분위기를 유쾌하게 띄운다.




몇 해 전 직업상담사로 일 할 , 팀장한테 불려 가 혼난 적이 있다. 어르신들께 자꾸 흥미나 적성 같은 얘기를 하면서 헛된 꿈을 심어 주면 눈만 높아져서 취업도 안 하려 하고, 그들 인생에도 하등 도움 될 게 없으니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얘기하라고 했다. 무조건 청소나 경비를 들이밀어야 한단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동의할 수 없었다.


들은 멀리서 왔을 뿐, 아직 학교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뿐, 따뜻한 심성과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젊고 앞길이 창창한 청소년들이다. 마땅히 여기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과 똑같은 크기의 꿈과 희망이 주어져야 한다. 수업 내내 이들이 뿜어내는 맑음, 웃음, 꿈, 청량함, 탐구심, 긍정, 희망 등. 그 모든 파랑의 이미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파아란 하늘과 흰구름 작은 강의실 안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학교로 가는 문은 닫히,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고, 생계를 위한 알바에 파묻혀 사방이 갇혀버린 그들의 세상이, 우물에 빠진 채 올려다본  하늘처럼 작은 프레 임안에  머무르지 않기를 소망한다. 또한,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이전 학력을 신속, 간단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절차정비해서, 하루빨리 학교라는 안전망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학생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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